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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31. 2021

다시 쓰는 일기 6 – 2021. 12. XX

세모에 떠올리는 생각들

세모歲暮. 신문이나 방송 같은 데에서나 가끔 들어볼까 요즘 누가 이런 문자를 쓸까. 세모의 사전적 정의는 ' 해가 저물어 설을 바로 앞둔 '라고 되어 있는데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가 남다르게 보이는  아무래도 나이 탓일 것이다.   때쯤이면 새해 달력을 들쳐보면서 누구 생일이나 집안 제사 같은 애경사도 짚어보게 되는데 요즈음에는 달력 구경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며칠  아이들에게 회사에 달력 들어온  있으면  가져오라 했더니 탁상  달력  개를 들고 왔다. 내가 기대한  벽걸이용 달력이라고 했더니 “아빠 요새 벽걸이용 달력 만드는 회사 별로 없어요.” 한다. 예전에는 12 중순쯤 되면 둘둘 말아서 비닐봉지에 넣은 달력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흔히   있었다. 달력이라도 들고 다닐 만한 사람이라면 어디 소속되어 밥벌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는 증명(?) 되었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   해가 가는구나, 하는 기분을 피부로 느낄  있었다. 일테면 대표적인 세모 풍경이었다. 그렇게 얻어  달력을     벽에 장식하듯 거는  새해를 맞는 준비  하나였다. 달력의 그림은 유명한 명화나 풍경이 많아서 달이 지나면 오려서 따로 갖고 있기도 했다. 여러 종류의 달력이 생각난다. 어릴  시골에는   열두 달이  장에 표시된 달력을 벽에 붙여 놓은 집이 많았는데 대개는  지방 국회의원이 홍보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넘기는 일력도 흔했다. 색실이 장식용으로 달려 있었는데 습자지처럼 얇고 부드러워서 화장실에   유용하게 쓰였다. 금은방이나 포목점 같은 데에 그런 달력이 유독 많았던  같다. 웬만한 기업체나 상점들이  달력을 만들었는데 특히 은행 달력을 선호하기도 했다.  많이 버는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아무튼 올해는 방마다는 고사하고 거실에도  달력 하나 구하질 못했다.  



예전에는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세시 풍속이자 예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워진 지가 오래지만 내가 떠난 2015년에만 해도 일본에서는 연하장 보내는 풍습이 여전했다. 서점이나 편의점에서 여러 장의 연하장을 사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붓펜으로 안부 인사말과 이름을 적어 보냈고, 또 받았다.. 비록 판에 박힌 인사 문구이긴 했지만.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연하장이 몇 장 있어 이맘때쯤 꺼내 보고 옛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상투적으로 정해진 그림과 문구를 담은,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전자편지’를 보내는 시대에 떠올려보는 (시대착오적인) 그리움일까?


      

달력 타령, 연하장 타령을 하는 걸 보면 역시 나는 늙은이다. 늙은이. 얼마 전 중국의 철학자 남회근의 『주역강의』라는 책을 보고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어제만 있고 내일은 없는 사람’인데, 이게 곧 노인들의 비애이기도 하다면서 노인들의 특징을 몇 가지 들었다. “사람이 늙으면 금방 이야기한 것도 곧 잊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의 일은 모두 기억합니다. 매번 하는 이야기는 이전의 이야기들뿐입니다. 노인들은 울어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으나 웃어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앉아 있으면 졸음이 오나 누우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노인들이란 이렇습니다. 노인들은 감히 내일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노화된 것입니다.” 배를 잡고 웃었는데 눈물이 났다!  



요즘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 중이다. 약 한 달간 걸린다고 하는데 그동안은 걸어서 오르내려야 한다. 우리 집은 14층이다. 나는 외출하지 않는 날이라도 아침에 한 번은 오르내리는데 신문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엘리베이터 공사 이후 신문배달원이 신문을 우편함에 넣고 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된다.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어느 남자분을 떠올린다. 그분은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늘 아침 일정한 시각이면 부인이 휠체어를 밀고 나오는데 동네 주변을 운동하러 다니기 위해서였다. 재활 운동이었다. 그런 모습을 여러 달 보았는데 어느 날인가 그분 혼자서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오가는 걸 보았다. 한 발 두 발을 힘들게 옮겨 놓으면서도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또 몇 달이 지났다. 언젠가 아파트 입구에서 마주쳤는데 지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났는데 아주 느리기는 했지만 전보다 훨씬 안정된 걸음으로 아파트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고 있었다. 15층 꼭대기까지 몇 차례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요즘은 거의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거의 완치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공교롭게도 내가 마주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상당히 많이 호전되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요즘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그분 생각을 많이 한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집 앞이다. 그러나 일부러 딴생각을 하려면 잘 되지 않는다. 한 층 한 층을 의식하면서 오르면 더 힘들다. 세상의 모든 곳이 배움터이고, 모든 일이 수양인 것 같다.      


금년도 마지막 방송분인 KBS의 <한국인의 밥상>을 본다. 중간에 양희은의 노래 <아름다운 것들>이 배경 음악으로 잠깐 나왔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소설가 김훈의 어느 글에 양희은의 노래에 대해 ‘양희은의 목소리의 힘은 세계를 안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자아를 세계 속으로 밀어내는, 공격적인 힘이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그리움이나 기다림을 노래하기보다는 사랑과 더불어 와야 할 자유를 노래한다. 그래서 양희은의 목소리의 쓸쓸함은 애절하지 않고 강력하다.’라고 했는데 참 김훈다운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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