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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an 16. 2022

다시 쓰는 일기 7 – 2022. 1. XX

너도 늙어 봐라

어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여덟이다. 어머니는 서른아홉에 홀로 되어 아들 둘을 키웠다. 아들 둘이라지만 하나는 일치감치 해외로 이주하는 바람에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머니는 건강을 타고난 것 같다. 아래위 모두 틀니를 한 것 빼고는 특별한 질병을 앓은 적도 없고 정신도 맑다. 상대방 말은 잘 듣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계속하지만 목소리는 쇠 소리가 날만큼 카랑카랑하다. 생활도 아주 규칙적이다. 새벽 5시면 기상해서 기도를 하신다. 기도라고 했는데 기독교 신자가 아니니 성경을 읽고 예배를 올리는 것은 아니다. 중년 무렵부터 절에 다니시긴 했지만 연세가 든 뒤부터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하지만 ‘부처님에게 의지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일찍 혼자되어 거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신심일 것이다. 아주 가끔 불경을 꺼내 보는 경우는 있지만 기도의 대부분은 집안 식구의 안녕과 평안을 비는 내용이다. 무탈하게 지내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주로 하시지만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이름 거론하며 각각 목전에 닥친 현안 사항(?)을 열거하고 부탁도 빼놓지 않는다. 거의 하루 종일이 기도하는 시간이다. 그게 당신의 일과이다.     



건강관리도 철저하다. 조금만 어지럽거나 기운이 쇠하다 싶으면 ‘공진단' 드시고 그래도 이내 차도가 없으면 ‘청심환 찾는다. 혈압약과 소화제도 명심해서 복용한다. 나이 들면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면서 본인 방에 생수를  준비해 놓고 있을  아니라 하루 두세   우유를 챙겨 마신다. 본인이 그렇게 자신의 건강을 챙겨 주니 자식으로서야 다행스럽다.  요즘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부담인가. 하지만 한편으론  빈틈없고 꼿꼿한 성품이 자식들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야 자식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를 보면 안쓰럽다.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걱정이고, 돌아서면 저녁 걱정해야 하는 아내다. 거기다 이가 시원치 않으니 그에 맞는 반찬을  걱정해야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편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당신 딴에는 뭔가 거들겠다는 마음에서이겠는데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는  애를 쓰지만 도리어 그게 다른 일거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긴장되기도 한다.     



오늘 오후였다. 안방에 있다가 갑자기 아내의 놀라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거실 화장실 세면대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 화장실은 현관 입구의 어머니 방과 가까워 주로 어머니가 이용한다. 아마 어머니가 화장실을 이용한 뒤 수도를 틀어놓은 상태로 나온 모양이었다. 사용한 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았다. 마개를 막은 세면대에 뜨거운 물이 하얀 김을 내며 콸콸 흘러넘쳐서 바닥까지 흥건한 상태였다. 이전에도 어머니는 주방이나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실수가 자주 있었다. 화장실 불을 끄지 않은 때도 많았다. 현관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기도 했다.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았다’는 경고 소리가 계속 들려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 혼자 남겨 두고 식구들이 집을 비울 때는 수시로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확인하곤 한다. 지금까지는 이런 사소한 실수를 목격하더라도 그냥 지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열린 수도꼭지는 잠그고 불은 끄고 문을 바로 닫고 그렇게 없었던 것처럼 지내 왔다. 그런데 오늘 일은 조금 지나쳤다 싶었던지 아내가 어머니에게 현장을 보여주었다. 본인의 실수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주의를 하리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현장을 본 어머니도 기겁(?)을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분명 잠근 것 같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더운물이 아까우니 걸레라도 빨아야 한다, 받아 놓았다가 머리라도 감아야겠다는 등 허둥지둥 행동이 부산했다. 아마 본인의 실수가 민망해서 그걸 흐려보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냥 버리지 뭘 그러냐며 들어가시라고 하고는 나와 아내는 방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오질 않고 계속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귀를 기울여 보았더니 ‘어서 빨리 가야 할 텐데, 바보 천치 같이 살아서 뭐하느냐’ 하는 말도 들리고 ‘늙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걸 무슨 난리라도 난 듯이 법석이냐’는 원망 소리도 들렸다. 아마 자식들의 그런 지적이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나는 어머니 방으로 갔다. 그리고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전에도 종종 비슷한 실수가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곤 했다. 오늘 굳이 이 장면을 보여준 건 어머니도 본인의 실수를 알고 있어야 앞으로도 좀 더 주의를 할 게 아니냐, 그래서 알린 건데 그게 그렇게 서운하시냐, 만약 우리가 하루 이틀 집이라도 비웠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면 큰일 아니냐, 그런 염려에서 한 행동이니 오해하지 마시라. 어머니는 금방 ‘그래 맞다, 그래야 나도 조심을 하지’ 하며 누그러지셨다. 그러면서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도 나이 먹어봐라. 늙으면 다 그리 된다’라고. 여전히 속 한 편에 못마땅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어머니 아직 나는 청년인 모양이네요. 얼마나 더 나이를 먹으면 늙은 것인지요’.라고 했다.      



세상사는 게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청상에 홀로 되어 한 세기 가깝게 온갖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노모도 가련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애매한 관계 속에서 환갑 진갑 넘도록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아내도 안쓰럽고, 늘 죄진 사람처럼 스스로를 자책하며 사는 나 자신도 딱하다. 무언가 서운한 마음이라도 생길 때면 어머니는 주변의 딸 있는 친척이나 지인들을 부러워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어머니 말처럼  ‘딸이라도 있었으면’ 어머니도 나도 아내도 조금은 헐거운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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