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효당 Jan 20. 2022

다시 쓰는 일기 8 – 2022. 1. XX

저 희디흰 눈은 누구의 허기를 채우려고 내리고 또 내리나

아침부터 펄펄 눈이 내린다. 동요에서처럼. 오랜만에 입사 동기 둘과 점심을 같이 했다. 동기들 정기 모임이 두 달에 한 번 씩 있지만 중단된 지 2년이다. 오늘 만난 두 사람 중 하나는 아직 밥벌이를 계속하고 있다. 퇴직 후 다른 회사에 임원으로 들어가 10년 넘게 다니고 있다. 다른 한 친구는 10년 동안의 해외 체류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해 귀국했다. 더운 나라에서 살다 온 탓에 추운 겨울이 적응이 안 된다며 두툼한 목도리 차림이다. 70년대 후반에 시작해서 40년 넘게 만나는 친구들인데 정작 그 회사를 떠난 지 10년이 넘는데도 만나서 하는 이야기의 8할이 회사 이야기다. 옛날이야기, 요즘 이야기, 동료 이야기, 선, 후배 이야기.          


 

우리가 입사한 70년대 말은 경제가 호황인 때로 웬만하면 다 취업이 되었다.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2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항공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교 수업은 건성으로 들어서 학점도 형편없었고 취업 공부에도 게을러서 아마 요즘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해 같은 과 졸업생 셋이 함께 입사를 했는데 그중 둘이 김포공항에 배치되었다. 김포 가도 주변이 온통 논밭이었던 시절이다. 공항 근무는 출퇴근 시간도 불규칙하고 주말에 근무하고 평일에 쉬는 날이 많았다. 대기업에 입사하면 넥타이 반듯하게 매고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의 쾌적한 사무실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유니폼 입고 하루 종일 고객 상대하는 서비스 업종이 내겐 너무 낯설었다. 성격에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당시는 특히 건설 경기가 호황이어서 건설회사가 많은 인력을 모집할 때였다. 건설회사는 급여도 좋았고 중동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몇 년 일하면 목돈을 만들 수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건설회사로 이직하는 동기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나 역시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장래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대우가 좋다 하지만 건설 회사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엉거주춤한 나날 속에서 엉뚱한 일들(?)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공항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유명 인사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작가들 몇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공항에 나오면 수속해 주고 짧은 시간이지만 문학 일반이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즐거웠고 다시 그들을 만난다는 기대에 설레었다. 파칭코를 하러 다니는 동기를 따라다니는 재미도 있었다. 오전 근무가 끝나면 그 친구는 무교동의 파칭코장에 가는 일이 잦았는데 제법 성적이 좋았다. 나는 그 친구가 딴 돈으로 조금씩 실습(?)을 해보았지만 결과가 좋은 때는 한 번도 없었다. 사교적이고 잡기에 능하던 그 친구를 따라다니는 일 또한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주 좋았다. 휴무일에는 같은 부서 선배 직원의 요트를 타러 다녔다. 그분은 당시로는 특별한 취미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자기 요트가 있었고 스킨 스쿠버와 바다낚시 취미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 분과 친하게 되어 다른 동기 한 명과 셋이서 매주 광나루에서 요트를 탔다. 햇볕에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었다. 나나 친구는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덕소나 팔당까지 오가며 요트를 타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을 만큼 즐거운 일이었다. 대천까지 바다낚시를 몇 번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답답한 공항 근무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전히 서비스 업종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절박감은 약해졌고 시간은 흘러갔다. 그 사이 파칭코를 같이 하던 친구는 모 건설회사로 옮겨 갔고 요트 주인인 선배는 해외로 이민을 갔으며 같이 요트를 타던 친구는 본사로 전근이 되었다. 이미 적당한 시기를 놓친 탓도 있었지만 어느덧 회사 생활에 적응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전직 같은 것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그 회사에서 정년을 맞고 다시 동종 업계에서 10년을 일함으로서 40년 가까운 세월을 항공회사 직원으로 살았다. 입사 초기 건설회사로 전직한 친구들 중 상당수는 중동 근무 등으로 목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이후 건설 경기 하강으로 대부분 조기 퇴직했다.           



집에 돌아와 내일 도서관에 반환해야 하는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눈 구경도 할 겸 공원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아내는 읽고 있는 책을 보더니 ‘당신은 책이 그렇게 재미있냐?’며 묻는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은 이중텐의 『미학 강의』였다. ‘책이 뭐 그렇게 재미있겠느냐, 달리 할 일이 없으니 붙들고 있는 거지’라고 대답했는데 사실이 그랬다. 몇 쪽만 읽어도 눈이 침침해지고 글자들이 희미해진다. 한쪽 넘기면 그 전 쪽의 내용이 무엇이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돌아가지만 다음 쪽에서도 똑같은 작업의 연속이다. 더욱이 이런 골치 아픈 책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자꾸 이런 책을 빌려 온다. 최근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미학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빌려 읽었다. 대학 교수가 쓴 미학 개론을 비롯하여 진중권 교수의 미학 관련 책 몇 권이 그것들인데 읽어도 읽어도 알 듯 말 듯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왜 그리 궁금한지 자꾸 미학 책을 빌려다 읽는다. 그래도 이중텐이 쓴 이 책이 비교적 읽기가 수월했다. 남회근도 그렇지만 중국인이 쓴 책들은 어려운 주제이면서도 쉽게 풀어쓰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중텐의 책에서는 칸트의 미학 이론은 알 것 같기도 했는데 여전히 헤겔 미학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원 가는 길에서 아내가 다시 책 이야기를 한다. 재미있지도 않은 책을 왜 그렇게 읽느냐는 것이다. 나는 똑같은 말을 한다. 달리 할 일이 없지 않으냐고. 나는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 저녁 시간 뉴스를 잠깐 보거나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 두, 세 개를 볼뿐이다.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 것을 빼면 스마트폰도 거의 보지 않는다. 재미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글 써서 올리는 일 빼면 컴퓨터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달리 뭘 하겠는가? 멍청하니 천장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루 종일 잠만 잘 수도 없고. 아내와 공원 길 산책하는 시간을 빼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나마 책 읽는 일밖에 할 게 없다.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이건 병이다.      



소제목으로 쓴 문장은 나희덕의 시 「朝餐」에서 인용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쓰는 일기 7 – 2022. 1. XX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