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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an 27. 2022

반성문

노년 단상斷想 2

직장 동기들이 모이면 밥값이나 찻값을 잘 내는 친구가 있다. 년 회비도 척척 잘 낸다. 아직 현역으로 밥벌이를 하는 친구거나 아내가 교사나 공무원 출신인 경우가 그렇다. 아내의 연금으로는 생활을 하고 국민연금은 제 용돈이란다. 아들, 딸이 의사인 친구들도 궁색함이 없는 것 같다. 요즘이야 부부 맞벌이가 대세지만 우리 때는 절반도 안 되었다. 맞벌이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겠지만 이제 와서는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친구들은 은퇴 후에도 바쁘기 그지없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찾아다닌다. 부부 동반해서 골프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 다니느라(요새야 코로나 때문에 꿈도 못 꾸지만) 스케줄이 빡빡하다. 소위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게 이런 친구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 중 다수가 강남 3구에 살거나 ‘마용성’ 지역에 살아서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값이 치솟아서 입이 귀에 걸렸던 친구들이다.     

외벌이였지만 일찍부터 노후 준비를 해온 친구들도 노년이 궁색하지 않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에 재능이 있어서 과외의 수입을 올린 것도 아니다. 그저 월급을 아끼고 쪼개서 열심히 연금을 들어 놓은 친구들이 그들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비슷한 처지였으면서도 그런 대비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후가 고달프다. 그렇다고 그들이 흥청망청 산 것은 아니다. 이재엔 재주가 없었지만 나름대론 아이들 열심히 키우고 성실하게 살았다. 다만 내일을 예상하고 허리띠를 조여 매는 실천이 부족했다. 그렇게 허둥지둥 사는 사이에 세월은 가고 어느새 정년이 닥친다. 매달 어김없이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은 거짓말처럼 끊어지고 생활비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국민연금 숫자를 짚어보며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때쯤이면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생각하며 뒤늦은 한탄을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처 그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면 현재의 규모를 과감히 줄이고 필수적이지 않은 건 버려야 한다. 그런데 너나없이 늙어서도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남들과의 비교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도 여전히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더 나은 생활을 바라보는 허황된 사람들도 있다.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아파트 평수에 집착하고 승용차를 고집한다. 주변의 잘 사는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비교하고 거기에서 오는 열패감에 속상해한다. 자신의 박복을 탓하고 배우자의 무능함을 한탄한다. 남편은 경차로 바꾸자고 하지만 아내는 극구 반대한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외제차에 고가의 목걸이를 자랑하는 친구의 자랑에 속상해하는 어떤 선배 아내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이 말했다는 ‘100km 남하론’이 기억난다. 

퇴직하고 10년에 한 번씩 100km 남하하면 노후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지금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강남에서 100km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가면 주택 값이 절반 이하로 낮아지고 소비도 줄게 된다. 옆으로 가든 밑으로 가든 10년에 100km씩만 남하하면 노후자금은 모두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고수하면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요즘에는 전국적으로 집값이 치솟아서 계획대로 잘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전 7∼8년 후배를 만났다. 작년에 퇴직한 친구다. 아들은 3년 전에 결혼했고 부부만 작은 집에서 단출하게 산다. 자동차도 없다. 퇴직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은 그리 궁색하게 살 형편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사이 자격증 두 개를 땄고 다른 자격증도 준비하는 것 같았다. 특별히 전문적인 자격증도 아니다. 한두 달 공부하면 될 만한 것들이다. 알바 삼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자격증 같았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실버 일자리 정보에도 밝았다. 공원에서 소독약을 뿌리거나 청소하는 일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집에서 놀면 뭐하느냐, 몸도 움직이고 용돈도 벌 수 있는 일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후배를 만나고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나는 어렵게 자랐지만 애초부터 이재에는 재주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물질적으로 어렵게 자란 사람은 돈에 대해 대체로 두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집요하고 악착같이 부에 집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돈에 환멸 같은 걸 느끼는 경우이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부러워했지만 돈 많은 사람은 부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복권을 사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것도 최근에 가족 모두가 재미 삼아(?) 산 경우이다. 비교적 오랜 세월 밥벌이를 한 덕택에 그럭저럭 아이들 공부시키고 최소한의 경제생활은 유지했지만 노후 준비라는 걸 해 놓지는 못 했다. 그런 걸 할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지만 절박하게 대비하지도 않았다. 평균 수명을 생각할 때 아직도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야 한다. 남은 세월을 재물도 욕심도 이름도 체면도 버릴 때 비로소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후배를 만나고 오면서 깨달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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