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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an 12. 2022

고객들이 싫어합니다

노년 단상斷想 1

언젠가 큰딸이 '아빠 글에는 한자 표기가 자주 나와서 꼰대 티가 난다. 닉네임도 <청효당>이 뭐냐, 그런 조선시대 식 별호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아이디의 상당수가 영어거나 아니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영어 조어나 한글 조어다. 또 본문에도 많은 영어 단어가 등장한다. 한자도 그런 많은 표기 방법들 중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인터넷 이용자의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이고, 내가 하는 표현은 젊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통 방식’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어차피 인터넷에 글을 쓰겠다면 그런 소통 방식에 맞추도록 노력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말대로 쉽지는 않다. 그동안 익혀온 자신의 언어 방식을 사용할 때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내 습관대로 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니까. 그래서 이번 글의 제목도 노년 단상이라는 한자어로 정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간단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나 고궁 등의 입장료를 면제받고 있으니 나는 분명 노인이다. 우리나라 노인복지법에서 노인의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한 건 1880년대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50 정도일 때 정한 기준을 아직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65세가 되고 이런 혜택을 받기 시작했을 때,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구나’하는 서글픈 생각은 들었지만 그 혜택 자체는 싫지 않았다(간사하게도). 가급적 지하철 교통약자석을 피해서 일반석에 앉으려 하고 (언젠가 어느 글을 보니 이런 게 꼰대 짓이라고 한다. 노인이 교통약자석을 비워 두고 일반석에 앉는 건 일반인이 앉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는 것이다.) 버스에서도 혹시나 누가 자리 양보 같은 걸 해주는 게 반갑지 않은 등 ‘노인 취급은 받기 싫지만 노인으로서의 혜택은 반가운 것’이다.  



내가 나이 먹었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낀 건 40년 직장 생활에서 은퇴한 후 일본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을 취득하고 난 후였다. 퇴직 후 약 4개월 동안 일주일에 사, 나흘, 하루 대, 여섯 시간씩 도서관 열람실에 박혀서 공부한 끝에  1, 2차 시험을 통과했을 때는, ‘아, 이제 나도 그동안 원하던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넘쳤다. 관광통역안내사란 흔히 말하는 ‘여행 가이드’를 말한다. 주로 여성들이 많이 하는 직업이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관광업계가 곤경에 처해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 날 때였다.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면세품 강매, 관광 안내원의 자질 부족, 과당 경쟁 등 관광 안내 서비스 품질에 대한 문제점도 불거져 나와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 단체 관광에서 소규모 개별 관광으로 여행 형태가 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그동안 여행사 소속으로만 가능하던 관광통역 업무를 자격증을 소지한 관광통역안내사가 독자적으로, 간단한 절차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예고한 상태였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그해는 지원자가 많았다.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의 경력도 아주 다양했다. 정부 고위 공무원이나 대기업 간부 출신도 여럿 있었고 퇴직을 몇 년 남기지 않은 사람들도 ‘일종의 보험 삼아’ 자격증을 따 두고자 했다. 청년 창업 희망자들도 적지 않았다. 조만간 법이 개정되고 1인 여행업 등록이 가능해지면 스스로의 아이디어에 따라 무궁한 발전이 가능하리라는 밝은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하는 말이지만 이후 코로나19가 닥치면서 관광업은 된서리를 맞아 1인 여행업이라는 게 언제나 가능해질는지 요원한 상태가 되었다)  자격을 취득한 후 나는 이제라도 금방 일자리, 아니 일거리가 생기리라는 기대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1인 여행업이 가능해지기 전에 경험을 쌓아둘 겸 용돈도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회신이 오지 않았다. 이미 오랜 기간 가이드 일을 해온 전문 안내인이 적지 않은 데다 특정 국가의 관광객 비중이 높다 보니 외국어 편중 현상이 심하기도 했다. 게다가 과거처럼 깃발 들고 단체 관광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개인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미리 관광정보를 충분히 조사한 후 개별 관광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어 여행사마다 관광통역안내사가 남아도는 사정이었다. 관광통역안내사는 정규직원이 아니다. 단체 승객이 배정되지 않으면 개점휴업 상태다. 당연히 수입이 없다. 1인 여행업에 대비한 경험 축적에 목적을 둔 나는 몇몇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현장 경험할 기회를 찾아보았지만 신통한 결과는 얻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회사 동료 한 사람이 자신이 재직 시 관계하던 대형 여행사 몇 군데 임원에게 연락을 해 본 모양이었다. 40년 항공사 경력과 일본어 구사 능력을 홍보하며 그저 한 달에 몇 건 일거리 배정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는 생각으로 청을 넣었더니 대뜸 나이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몇 살이라고 했더니 다음 이야기는 꺼낼 필요도 없다는 듯 “노인을 가이드로 배정하면 손님들이 싫어합니다. 나중에 컴플레인 들어와서 입장이 난감해지거든요. 그 나이에 그냥 쉬시지 뭐 굳이 일을 하려느냐’며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라고 했다. 서양 관광객들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유독 나이 든 안내자를 꺼린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 사태를 겪고 나니 설사 1인 여행업이 된다 한들 사정은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심난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상을 65세 이상 관광객으로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인 관광객에 노인 가이드라면 통하는 데가 있을 테니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중장년 창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았다. 부지런히 문화유산을 찾아다녔고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게 벌써 3년 전 일이다. 나이는 세 살이 더 많아졌고 눈가에는 째글째글한 주름살이 더 늘었다. 코로나19에서 벗어날 날이 언제쯤인지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희망에 들떴던 기대는 점점 멀어져 간다.   

  


브런치 작가로 신청할 때 자기 직업을 적는 난이 있었다. 무직이나 백수 같은 게 있나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그래서 생각하다 고른 것이 프리랜서였다. 프리랜서, 참 좋은 말인 것 같다. 뭔가 돈도 수월찮게 벌면서 자유로운 직업 같은 인상을 주어서이다. 요즘 프리랜서라 하면 특히 방송국 같은 데서 아나운서를 하다 이름이 많이 알려지면 사직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활동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한 곳에 고정 직원으로 있으면 안정적이긴 하나 자신의 인기에 비해서는 받는 처우가 초라하다는 생각에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프리랜서로 나서는 것이겠는데, 나 같이 정년퇴직한 사람이 가장 해보고 싶은 게 그 프리랜서였다. 그래서 퇴직 후 구직 사이트에 ‘일본어 통, 번역’ 프리랜서 지원을 수도 없이 해봤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답변을 해 준 곳이 없었다. 물론 1차적으로는 내 경력이 그들이 보기에 시원치 않아서였을 것이다. 사실 일본어만 하더라도 통번역대학원 나온 사람, 일본에서 몇 년 동안 유학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그러니 아무리 7년 넘게 대기업 일본 주재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들 그런 경력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번역이든 통역이든 시험이라도 볼 기회가 주어지면 덜 억울하겠는데 그런 기회를 준 곳은 한 곳도 없다. 아마 내 나이만 보고 나서 화면은 넘어갔을 것이다. 아직도 구직 사이트에는 그런 내 이력서가 쓸쓸하게 남아 있다. 

 


작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에 이어 올해 배우 오영수 씨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아서 화제다. 아름다운 노년을 사는 분들이다. 예술을 하는 분들이라 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노인들에게도 뭔가 용기를 주고 자극을 주는 것 같다. 


(사진은 넘은들공원 책쉼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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