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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11. 2022

부질없는 생각들

기억나지 않는 일들, 기억나는 풍경들

산 날이 기니까 당연히 겪은 일도 많다. 똑같은 시간을 산 사람이라도 겪은 일은 천차만별이다. 양은 비슷하다 해도 그 내용은 제각각이다. 같은 시간을 파란만장하게 산 사람도 있고 굴곡 없이 밋밋하게 산 사람도 있다. ‘내가 겪은 일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지 모른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책 몇 권을 쓰려면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문인들, 특히 소설가들은 정말 기억력이 대단한 것 같다. 서너 살 먹었을 때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똑똑하게 기억하는가’가 중요한 소설가의 소질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짧지 않은 시간을, 그것도 나름 굴곡 많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기억나는 일은 그 시간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는 것 같다. 유년기의  일은 언감생심이고 2, 30대의 일도 까맣게 잊어버린 일이 태반이다. 가족들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아무 날 아무 때에 그런 일이 있었지 않느냐고 하면 나는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을 해내지 못해 핀잔을 받기도 한다. 아흔을 훌쩍 넘긴 내 어머니는 지나온 삶의 흔적들을 사진을 보듯이 기억해내신다. 서울에 온 후 수도 없이 옮겨 다닌 동네를 동네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이름 - 순옥이 엄마, 쌍둥이 엄마, 민욱이 할머니 등 -까지 다 기억하고 친척 누구에게 설움과 면박을 당한 일을 날짜까지 되뇌기도 한다. 같은 경험 범위에 있는 일이니 당연히 나도 같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 일이라 때로는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자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동안에 정리해 놓겠다는 생각으로 미주알고주알 지나간 일을 물어 적어 놓고 있다.      



중국 출신의 저명한 철학자 남회근(2010년 작고) 선생의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권이 번역 출판되었는데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이 늙었다는 표시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어제 그제 일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수십 년 전의 일은 생생하다. 둘째는, 누우면 잠이 안 오는데 앉으면 꾸벅꾸벅 존다. 마지막으로, 울어도 눈물은 나오지 않지만 웃으면 눈물이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이로 봐서는 당연히 예전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기억상실증 환자가 아닌 바에야 아무런 기억이 없을 수야 없다. 다만 기억에 남아 있는 분량이 극히 미미한 데다 그 기억도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영화의 ‘컷’처럼 단순한 이미지나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대충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예닐곱   살던 ,  가까이 낮은 언덕이 있었고  언덕 위로 기찻길이 있었다. 언덕에는 잡초들이 무성했다. 토끼풀이 있었고   클로버가 있었다. 집 근처예는 작은 못이 있었고 눈이 퉁방울 같은 왕잠자리들이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집에는 닭장이 있었다. 그런데 닭은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담임 여선생의 결혼식을 보러 갔었다.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갔었다. 연지 찍고 곤지 찍은 담임선생님의 이미지만 흐릿할  얼굴 모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차일을  전통 혼례식장, 사람들이 북적였다.  쓰고 두루마기 입은 노인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살던 동네 좁은 골목의 어느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맑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나른한 오후.

초등학교 학예회 때 마분지로 만든 토끼 모자를 쓴 내가 친구와 마주 보며 무용하던 장면, 그때 내 토끼 귀 한쪽이 꺾여 있었지. 장날이었다. 어머니는 어디론가 물건을 사러 가고 나 혼자서 보따리 하나와 한 되들이 술병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지나가다 그 술병을 깨뜨렸다. 나는 울며불며 그 아저씨 옷자락을 붙잡고 물어달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오셔서 그 아저씨와 뭐라고 다투던 장면. 어느 친척집에서 먹은 잊을 수 없는 두부찌개의 맛, 시골 큰집에서 본 LP 레코드 판 2장 – 나중에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미소라 히바리의 「미나토마치 삼반지」임을 알았다 -.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첫날, 얼굴이 분결처럼 희고 머리를 짧게 깎은 여학생 – 부반장이라고 했다 -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장면. 창경원(창경궁) 연못 가 바위에서 어떤 미군 장교와 사진 찍던 장면, 안경 낀 그 잘 생긴 미군 장교의 흐릿한 이미지. 어느 날 밤 철도국에 다니던 아버지와 함께 찾아간 아버지 상사의 사택 앞에 서 있던 외등, 그 외등에서 쏟아지던 따스한 불빛. 여름날 밤, 시골 큰집 대청마루 기둥에 걸려 있던 흐릿한 호롱불, 쥐 죽은 듯 고요하던 그 괴괴하고 적막하던 정적, 그 정적을 깨고 끊어질 듯 이어지던 청아한 풀벌레 소리. 어느 봄날 양은 대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물을 희롱하던 햇살에 넋이 빠져 있던 장면 등.     



이런 식으로 스토리는 없이 장면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것도 극히 제한된. 기억이 제값을 하려면 장면과 장면이 연결되며 상황이 전개되어야 하는데 사진처럼 독립적이니 온전한 기억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문인들의 그 섬세한 기억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의 기억에는 사건이 있고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을까. 타고난 기억력, 그 자체가 재능이 아닐까.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는 것을 소유의 삶이라 했다.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해두면 애써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재의 삶은 당시의 사건과 풍경을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적극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요 며칠 책상에 앉아 옛날 일을 기억해 보려고 생각을 집중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기왕에 떠오른 장면만 되풀이해서 보일 뿐이었다. 역시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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