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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03. 2022

청벚꽃이 피거든 다시 와 보거라

상왕산 개심사에서

개심사開心寺는 세 번째다. 오래전 고등학교 동창과 한 번 왔었고, 그 뒤 가족 여행길에 들른 적이 있다. 개심사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 양쪽으로는 광활한 목장지대가 이어진다. 운산면 목장지대로 유럽의 전원마을을 지나는 것 같다. 이 목장은 1960년대 김종필 전 총리가 조성한 것이라 한다. 4월 말 경이면 능선을 따라 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길 왼쪽으로 그리 크지 않은 저수지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러 차를 세우고 절집을 향한다. 상왕산象王山개심사라고 적힌 일주문이 나온다. 개심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654년(의자왕 14) 혜감慧鑑국사가 창건하여 개원사開元寺라 하던 것을 1350년(충숙왕 2) 처능處能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고 한다. 일주문 옆에 세워진 안내문을 읽어 본다. 산 이름인 상왕산은 코끼리의 왕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을 상징하고 ‘무아경無我經’을 설한 인도의 산 이름이기도 하며, 개심사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金鷄抱卵形)이라고 적혀 있다. 일주문을 지나 작은 개울을 따라 걷다 보면 정갈하게 잘 조성된 돌계단이 나온다. 공들여 다듬은 계단이지만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길 양옆으로는 소나무 숲이다. 화가 이호신이 ‘피안이나 극락으로 가는 길목이 있다면 이 소나무 숲과 돌계단길’이라고 한 그 길이다. 돌계단을 따라 10분쯤 산길을 오르면 장방형의 연못이 나오고 그 건너편 언덕 위로 범종각과 안양루가 보인다. 연못 한가운데 통나무 기둥을 반으로 잘라 걸쳐놓은 외나무다리가 있다. 개심사의 명물 중 하나다. 연못에 수련이 필 때면 더욱 볼 만할 것이다. 개심사의 연못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는 작았다. 아담했다. 내겐 왜 그렇게 커다한 연못으로 기억되었을까? 연못을 건너 계단을 오르면 안양루安養樓인데 그 오른편에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가는 해탈문이 있다. 안양루에 걸린 편액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스승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고 한다. ‘코끼리 상象자’가 정말 코끼리처럼 보인다.    

   보물 143호로 지정된 개심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성종 6년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484년(성종 15)에 새로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주심포 건물이다. 아미타불과 그 양옆에 협시불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정면 벽에 걸린 탱화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영산회괘불탱>이라고 하는데 보물 1264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조선 영조 48년(1772)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많은 절을 구경했지만 탱화에 대해 관심 있게 본 적은 없다. 불교에 대한 지식도 빈약하고 그림 보는 안목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예전에 1부만 읽었던 박경리의 『토지』를 최근에 5부까지 읽으면서 탱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토지 5부에는 장년의 길상이 자신이 자란 지리산 절에 머무르며 그린 관음 탱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길상은 어린 시절 절에서 금어金魚 수업을 받았었다. 관음 탱화를 본 임명희와 길상의 아들 환국 등은 그 관음 탱화에 큰 감동을 받는데 왠지 그 대목이 계속 내 머리에 남아 있어 요즘은 절에 가면 법당에 걸린 탱화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개심사의 명물로 건물 기둥을 꼽는다. 따로 손질을 하지 않고 원래의 모습대로 갖다 쓴 것인데 배가 불룩하니 위, 아래의 굵기가 다르고 구부정하니 굽어 있다. ‘못난 중생도 부처의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이 못 생긴 기둥들에서 느껴서 왠지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는 한국경제신문 최병일 기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안양루 옆의 해탈문, 심검당 등의 건물들이 그러한데 특히 범종각의 네 개의 기둥은 모양이 제각각으로 해학적인 분위기를 풍기기까지 한다.  전각뿐만 아니라 기와지붕을 얹은 나지막한 돌담도 소박하고 정겹고 푸근하다. 또한 개심사는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명부전 앞뜰에는 커다란 청벚꽃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개심사 홍벚꽃, 청벚꽃은 일반 벚꽃보다 1달 정도 늦어 4월 말에서 5월 초가 절정이라고 한다. 세 번째 와 보는 개심사지만 한 번도 벚꽃을 보지는 못했다. 아직 꽃망울도 맺지 않은 나무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명부전으로 가는 길가의 기와 엊은 돌담길이 정겹다. 명부전을 지나 산길을 따라 상왕산 전망대로 향한다. 분홍과 노랑의 꽃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보인다. 물푸레나무, 고로쇠, 감태나무, 비목, 때죽나무들이 저마다 허리에 이름표를 달고 있다. 모두 4∼5월에 꽃이 피는 나무들이다. 숨이 턱에 찰 정도가 되어 전망대에 이르렀다. 멀리 서산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으나 눈앞을 가리는 나무들로 좋은 전망이 되지는 않았다. 뒤따라 올라온 노부부가 뭐라고 아쉬운 듯한 말을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절집을 내려다본다.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절이 아니면서도 개심사는 경건하고 그윽한 분위기의 절이다. 건물과 담들이 자연과 아주 잘 어우러진다. 당돌하지 않고 차분하다.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마음을 열어주는 절, 개심사.

대웅전 앞마당을 거쳐 해탈문을 나왔다. 다시 외나무다리를 걸어 연못을 건너와 나무 의자에 앉아 범종각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절 경내가 화사하게 핀 벚꽃들로 온통 ‘꽃대궐’이 된 진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절 뒤를 감싸 안은 산에서도 온갖 색색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딴 세상처럼 보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보니 하얀 덩어리의 뭉게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만 보일 뿐 꽃은 보이지 않는다. 절집에서 내려오는데 뒤에서 ‘청벚꽃이 피거든 다시 한번 와 보거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처님의 소리였다.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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