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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Mar 19. 2022

다시 쓰는 일기 11 – 2022. 3. XX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붓글씨 쓰러 가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 시내 모 도서관 문화교실에서 운영하는 서예반에 다니고 있다. 시작한 지 3년 조금 넘었지만 코로나19로 2년은 쉬었기 때문에 실제로 배운 기간은 1년 남짓이다. 지하철을 40분 타고 15분을 걸어야 한다. 지하철에서는 스마트 폰에 적어간 시 한 편을 외워보려고 애쓴다. 한 동안은 문고본 일본 소설을 읽었으나 눈도 침침하고 남들 보기도 쑥스러워 그만두었다. 퇴직하고 나서 꾸준히 해 온 일 중 하나가 시 베끼기였다. 외출하지 않는 날에는 매일 3편씩 베꼈다. 지금까지 베낀 시들이 대략 1,500여 편은 될 것 같다. 그 가운데 외울 수 있는 시들은 극히, 아주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요즘, 베낀 시들 가운데 제목에 동그라미 쳐 놓은 시들을 외워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오늘은 원재훈의 「은행나무 아래 우산을 쓰고」를 적어 왔다.      


은행나무 아래 우산을 쓰고

그대를 기다렸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

저것 좀 봐, 꼭 시간이 떨어지는 것 같아

기다린다. 저 빗방울이 흐르고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고

저 우주의 끝까지 흘러가

다시 은행나무 아래의 빗방울로 돌아올 때까지

그 풍경에 나도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 때까지(이하 생략)     


제법 긴 시라서 금방 외워지지는 않는다. 아마 며칠을 지나야 외울 수 있을 것 같다. 시를 읽는 중에 가족 카톡방에서 작은 딸이 올린 문자가 뜬다. 직장 상사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듯했다. 이전에도 가끔 그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 아이가 올린 글로 볼 때 딸아이가 충분히 그럴 만한 것 같았다. 아내도 나도 큰 딸도 막내아들도 열이 받쳐(?) 한 마디씩 한다. 딸아이는 ‘확 때려치워 버릴까’하고 격한 감정을 쏟아놓기도 했다. 아내는 ‘그래도 참아야지’ 하며 말리기에 급급했고, 나는 어느 조직이건 그런 몰상식한 간부 직원은 있는 법이라고 위로(?) 했다. 막내아들도 자기 회사 임원 하나가 그렇다며 동조를 했다. 차마 상사를 쥐어박진 못하겠고 점심 심사 때 ‘콜라나 한잔 때려야겠다’는 딸아이의 말과 함께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최근 오미크론 기세가 너무 거세진 탓인지 수강생이 반도 안 된다. 덕분에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꼼꼼하게 지도해 주신다. 내 글씨는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당연하다.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들쳐보지도 않는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댄다. 오늘도 선생님은 집에서 쓴 것을 보자고 하는데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둘러댄다. 붓글씨는 참 어렵다. 도무지 붓이 내 맘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선생님이 쓴 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여러 번 돌려보고 흉내를 내려해 보지만 붓만 잡으면 제 멋대로 논다. 획은 굵어지고 좌우 균형은 맞지 않고 내려긋기는 삐딱하고 먹물 조정이 되지 않고···· 오늘도 한숨만 쉰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서 교실 밖 복도 창문 앞으로 간다. 코로나 때문에 실내에서는 음료수를 마시지 못한다. 마당에 큰 나무 몇 그루가 있다. 그중 한 나무가 특이하다. 옆으로 퍼져 나간 가지들이 무질서하게 그물처럼 엉켜 있는 제법 큰 나무다. 흡사 고통을 못 이겨 온몸을 뒤틀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수많은 잔가지들은 세찬 비바람에 이리저리 쏠리는 빗줄기 같이 보이기도 한다. 저 잿빛의 메마른 가지들, 지금 저 가지들 속에서는 봄을 위한 분주하고 치열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겠지. 그리고 어느 날 마술처럼 파란 싹이 나오고 아름다운 꽃이 피겠지. 교실로 돌아와 선생님이 써준 체본에 따라 몇 장을 더 연습하고 나서 주섬주섬 가방을 정리하고 도서관을 나선다. 도서관 인근의 김밥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서예교실에 오는 날이면 언제나 이 집에서 밥을 먹는다.      



인사동 인사아트플라자에 들러 소리꾼 장사익의 사진전을 구경했다. 장사익 씨가 아내의 스마트폰을 빌려(장사익 씨는 스마트폰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사는 동네 근처를 돌아다니며 찍은 것이라는데, 그의 말대로 ‘어, 이런 것도 사진이 되네’할 만큼 발상이 특이했다. 사진이 아니라 마치 비구상 회화를 보는 듯했다. 피사체는 흰 벽에 누더기처럼 덧칠한 검은 페인트, 칠이 벗겨진 담장, 방수 칠한 벽, 못과 칼 같은 것으로 긁은 자국들, 비올 때 아스팔트 바닥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을 한껏 클로즈업하여 찍은 것들이다. 틀에 갇히지 않은 자기만의 사진! 풍경의 놀라운 변신이다.      



 근처 마을 도서관에 들러  4권을 빌렸다. 2주에    하는 일이다. 대출 이력을 검색해보니 어제까지 260권을 빌렸다. 2019 5 21일부터 빌린 것들이다. 오늘 빌린 책은 박경리 『토지』 18, 박이문의 『예술철학』, 다카시나 슈지의 『미의 사색가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다. 열심히 책은 읽지만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기에 그리 쉬운 책들도 아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 대충 넘어가는 대목도 많다. 그런데도  이런 ‘머리 아픈책들만 고르는지 나도 모르겠다.


(소제목으로 쓴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가곡의

한 소절아자 최인훈의 희곡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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