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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25. 2022

다시 쓰는 일기 12 – 2022. 4. XX

잎은 피어라 청산이 되고 꽃은 피어라 화산이 된다

봄에 피는 꽃도 순서가 있단다. 한국경제신문 고두현 논설위원의 글을 보고 알았다. 글에 따르면 ‘혹한 속에 망울을 내밀기 시작한 동백부터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으로 꽃잎을 터뜨린다’고 한다. 또 ‘꽃대가 충분히 따스해져야 꽃눈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서도 양지와 응달에서 피는 순서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같은 단지 아파트에서도 남향집인 우리 동 앞의 목련은 이미 만개한 후 그 굵은 꽃송이가 뭉텅이 째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데 맞은편 동 화단의 목련은 이제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 한 줄기에서 나는 꽃잎도 그 차례가 다르다고 한다. ‘꽃대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며 피는 꽃은 무한 꽃 차례, 위에서 아래로 피는 건 유한 꽃 차례’란다. 이렇게 꽃이 시차를 두고 피는 이유는 개화 시기를 늘리고 꽃가루받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자연의 신비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유홍준 교수가 중앙일보(3.27)에 쓴 글도 제목이 ‘꽃 차례’다. 그에 의하면 봄꽃은 (이름으로는 겨울꽃인)동백꽃을 시작으로 생강나무, 산수유, 매화가 거의 동시에 피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산수유는 구례 산동마을, 매화는 광양 등 섬진강에서 올라온다. 매화의 아름다움은 노매老梅에 있다는데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순천 선암사의 무전매, 양산 통도사의 자장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의 매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매화 종류가 참 많기도 하다. 이렇게 남쪽에서 봄꽃이 시작될 때 서울 도심에선 봄의 전령인 목련꽃이 만발하고 이내 개나리와 진달래가 전국적으로 피기 시작한다. 이어서 벚꽃이 만발하면 그때가 봄꽃은 절정을 맞는 시기라고 한다. 유 교수의 글에는 나 같은 사람은 생전 듣도 보도 못했거나 겨우 이름 정도 들어본 꽃과 나무의 이름들이 줄줄이 열거된다. 살구꽃, 배꽃, 명자꽃, 사과꽃에 이팝나무, 백당나무, 미선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 귀룽나무 등등. 그 글에 열거된 꽃과 나무들 중 실제로 내가 본 것들을 꼽아 보니 다섯 손가락도 다 못 채운다. 참 윤기 없이 살았구나 하는 자탄이 든다.     

일주일에 한 번 붓글씨 쓰러 가는 도서관에는 벚꽃이 유명하다. 지지난주만 해도 만개한 벚꽃으로 꽃대궐을 이루었었는데 지난주에는 초록색 잎들만 시치미를 뚝 떼고 미풍에 어지럽게 일렁일 뿐이다. 불과 일주일, 그사이 하늘을 덮을 듯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벚꽃을 보러 모여든 사람들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던 도서관 정원도 썰렁하다.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 하는 나이 든 사람 몇몇만 보인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나면 봄마다 홀가분하게 ‘꽃구경이나 다녀야지’ 하고 별렀었다. ‘동백꽃 피는 항구’ 여수도 가보고 유채꽃 만발한 청산도도 가보고, 선암사 매화도, 지리산 철쭉도 보러 가고 싶었지만 퇴직한 지 4년 넘은 지금 수첩에 깨알같이 ‘정보’만 적혀 있다. 코로나 정국이 지난다 하더라도 그 꿈을 실현할 것 같지는 않다. 누구는 그런다. 아파트 화단에 철쭉이다 동백이다 개나리다 온갖 봄꽃이 만발한 데다 한 발만 나가면 이름난 호수공원이 있는데 굳이 꽃 보러 그 멀리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고. 그런데 꼭 꽃만 보러 가는 건가. 산도 보고 강도 보고 절도 보는 거지. 그러면서 맛집 찾아 밥도 먹고 옛날 생각도 해보고 때로는 길도 잃고 인생무상 같은 감회에 젖어보기도 하는 거지. 엊그제 TV를 보니 머지않아 노인들 운전이 제한될 것이라 한다. 노령 층의 운전 사고가 심각하기 때문이란다. 완전히 운전을 금지할 수야 없겠지만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 등은 어렵게 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꽃구경이나 산천경개 유람은 어렵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엔 제한이 있으니 말이다. 전세 버스 타고 부부 동반해서 놀러 다니는 체질이 아닌 나 같은 사람에겐 우울한 소식이다.



이 달 초에 충청남도 서산의 개심사를 다녀왔었다. 개심사는 청벚꽃이 유명한 곳인데 일반 벚꽃보다 한 달이나 늦게 피는 꽃이라 아직 꽃망울조차 눈에 띠지 않을 때였다. 개심사에 다녀온 기행문(?)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일주일 만에 조회 수가 무려 700회가 넘었다. 평소 내 블로그의 하루 방문객이 10명 남짓에 불과한데 이 무슨 변고라니! 모두 다 청벚꽃, 개심사 등의 검색어를 통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일주일이 지나니 하루 방문객이 5∼6명으로 떨어졌다. 마치 벚꽃 지듯 말이다. 역시 자연은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일상 삶의 자잘한 대목에서까지도 그 덧없음을 깨닫게 하니까 말이다.      

 고두현 논설의원은 화창한 봄날 낙심하거나 절망한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어디 한 두 번이랴 (중략)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뭐 절망할 만큼 심각한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뾰족하게 희망적인 일도 없으니 한번  기다려 보자, 내 앞에 찾아올 그 꽃 필 차례를., 무슨 꽃이 필지를.


(부제목은 제주 노동요 <신아외기소리>  구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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