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효당 May 12. 2022

다시 쓰는 일기 13 – 2022. 5. XX

사회생활에 문제는 없다

계획대로라면 지금  시간에는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을 올라가고 있어야 한다. 어제 속초에서 1박을 하고 오늘 아침 곰배령을 오르는 가족여행을 계획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지금 집에서  글을 쓰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날이 있어 행사가 많은 달인데 특히 우리 가족은 5월에 기념일이 집중되어 있다. 내가 결혼한 달이 5월이고 아이들 셋이 모두 5월생이다.  사위도 5월생이다. 그래서 아이들 휴가 일정 등을 조정해서 가능하면 5 중의 어느 날을 잡아 가족 모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올해는 속초 바닷가에서 멋진(?) 식사를 하고 하루를 묵은  다음날 곰배령 산행을 하기로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숙소도 일찌감치 잡고 곰배령 탐방 예약도 시간 맞춰  놓았다. 그리곤 여행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곰배령에 대해서  책들을 찾아 읽고 야생화에 대한 사진들과 자료들도 찾아보았다. 곰배령을 흔히 ‘천상의 화원이라고 한다. 사시사철 갖가지 야생화와 수목들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힐링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곰배령이라는 특별한 지명을 알게  지는 오래되었다.  수년 전인가 어떤 연유가 있었던지 곰배령 탐방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여행사에서 정기적으로 산행 일정과 소식을 메일로 보내왔다. 전세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식사와 탐방 예약, 곰배령 해설 안내 등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평소 들어보던 장소가 아니었기에 무심히 넘겨버려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메일에 올려진 곰배령의 풍경 사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후로 곰배령에 대해서 이리저리 알아보게 되었고 언젠가  보아야  곳으로 점찍어 놓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잊고 지냈다. 곰배령을 다시 떠올린 것은 YTN  프로그램과 KBS ‘한국기행  장소가 소개되었고 임영웅이 부른 ‘곰배령이라는 노래도 듣게 되면서였다. 그렇게 일치감치  가족을 동원하여 ‘제반 준비를 철저히  놓고여행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비교적 가족 여행을 많이 한 편이다(그렇게 생각한다). 90년대 초 일본에서 주재 근무를 할 때는 막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고 위로 두 아이가 아주 어릴 때였는데 틈만 나면 당일이나 1박 2일, 가끔은 사나흘 일정으로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한밤중에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 복잡한 도쿄 시내를 통과하여 가까이로는 치바현이나 요코하마, 시즈오카현, 북쪽으로는 나가노현이나 동북지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으로 자동차 여행을 다녔다. 때로 밤늦도록 숙소를 찾지 못해 동네를 헤매기도 했고 나가노 고지대를 위태롭게 오르내렸으며 동북지방의 겨울 여행에서는 폭설로 애를 먹기도 했다. 자동차 운전만 10시간 넘게 한 적도 많았다. 아내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다고 하면서도 덕분에 일본 각지를 다녀볼 좋은 기회였음을 회상하곤 한다. 국내에서도 그랬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로도 거의 일 년에 서너 번은 2∼3일짜리 가족여행을 다녔다. 산에 오르는 걸 힘들어하는 딸아이들을 데리고 지리산 노고단에도 올라갔고 가을 억새를 보러 정선의 민둥산을 오르기도 했다. 왜 나는 이렇게 가족여행에 집착하였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탓에 나는 어려서 가족여행이라는 걸 해 본 기억이 없다. 가족은 여행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쌓는다. 내게는 그런 추억이 없다. 특히 아버지와의 여행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 그런 아쉬움이 아이들과의 여행에 그토록 집착해 왔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그리워할 수 있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땡볕에 무거운 짐을 끌고 숙소를 찾아 1시간 넘게 걸어가는 고생이 있었지만 밤늦도록 갯벌에서 맛살잡기 삼매경에 빠졌던 선유도 여행, 민둥산 넓은 평원에 은빛으로 물결치던 억새를 보러 간 야간열차 여행, 자동차 고장으로 비상 라이트를 켜고 시속 30KM 속도로 서울까지 왔던 강원도 평창 여행, 이천에서의 도자기 공방 체험, 아빠는 왜 절만 찾아다니다며 불평하던 내소사, 선운사 여행,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할 뻔했던 울진, 삼척, 봉평 여행 등, 기억에 남는 여행이 하나 둘이 아니다.      



속초 여행 출발을 열흘 앞둔 날. 몸이 찌뿌듯한 게 컨디션이 아주 좋지 않았다. 오후 들어서 한기가 나고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났다. 한 달 전쯤에도 콧물이 나고 열이 나는 증세가 있었는데 혹시, 하는 염려가 들었지만 감기약을 먹고 자고 나니 나아졌고 이내 개운해졌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했지만 지난번과는 증세가 달랐다. 아침이 되어서도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한 것 같았다. 아내는 검사를 받아보라고 걱정을 했지만 감기일 거라며 조금 더 있어보자고 했다.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음성이 나왔다. 일단 안심이 되었지만 자가 진단 키트를 백 퍼센트 믿어서는 안 된다는 주변 사람들 말이 생각났다. 서둘러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다. 양성이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니 2년이나 잘 버텨오다 이제 마스크까지 벗을 정도로 위험도가 낮아진 상황에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하는 짜증스러운 기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어디서 옮아(?) 온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외출을 한 날도 많지 않았고 최근에 사람을 만나 밥을 먹은 일도 없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구경을 다녔지만 혼자 다녔다. 지하철이야 여러 번 타고 오갔지만 그야 벌써 2년도 넘게 타 온 것이 아닌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자가 격리!’ 자가 격리가 풀리는 날은 속초로 가기 전전날이 된다. 나는 그래도 다행이라 여기고 여행 포기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아이들의 극력 반대로 결국 여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더욱이 5시간의 산행은 도저히 무리라며 가을로 일정을 미루자고 했다. 설사 자가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시간이 경과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경우 또한 없지 않다고 했다. 고집을 피울 사항이 아니었다. 책에서 살펴본 곰배령 야생화 군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을 커밍아웃한다'며 카톡방에 적은 말이 떠올랐다. “요즘 코로나 걸리지 않은 사람은 사회생활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대요” 다행히 나는 사회생활에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쓰는 일기 12 – 2022. 4. XX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