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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May 13. 2022

사진 구경 5 – 사울 레이터 사진전

  몇 차례 사진 전시회를 구경하러 다녔지만 모두 한국 사진작가들의, 그것도 주로 흑백 사진 전시회였다. 사진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기보다는 지난 한 시절의 추억의 모습을 찾아다녔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1950∼60년대 서울의 모습을 찍은 한영수의 사진들, 1980년대 후반 울릉도 노인 부부의 일상을 찍은 이정진의 사진들, 사라져 가는 여인숙 사진들(이강산) 등이 그랬고 1970년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를 찍은 강운구의 『마을』, 1950∼60년대 자연 풍경과 인물을 찍은 김명철의 『아름다운 소풍』 등 몇 권 가지고 있는 사진집들도 그런 성격의 사진들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 전시회가 화제인데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도 나는 시큰둥했다. 한국 사진작가가 아닌 데다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컬러 작품이라기에 더욱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신문에 소개된 기사와 함께 실린 그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강렬한 색채에 여운을 남기는 구도가 시간이 지나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시장소가 ‘피크닉’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일전에 윤광준의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언제고 가보아야 할 곳으로 점찍어 두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로 불리는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는 1923년 미국의 펜실바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출생하여 2013년에 사망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교 성직자로 그 또한 어려서부터 신학교 교육을 받게 되지만 종교적 생활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대학 중퇴 후 가출하여 뉴욕으로 가서 미술을 공부하다 1948년경부터 칼라 슬라이드 필름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컬러 사진 촬영이 시작되는 1970년대보다 무려 30년이나 빠른 것이다. ‘회화를 통해 익힌 색채감각과 사물을 보는 섬세한 시점이 뛰어난’ 그의 사진들은 잡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1958년부터는 <Happer’s BAZAR>지의 카메라맨으로 활약하며 이 잡지 이외에도 60∼70년대 많은 패션 잡지들에 그의 사진이 실린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그는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리고 이후 뉴욕 이스터 빌리지의 아파트에서 칩거하며 오랫동안 잊힌 사람으로 지냈다. 1994년, 96년 두 차례 그의 아파트에 보관된 컬러 사진들이 현상되어 전람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지만 전시회가 끝나자 다시 잊힌 존재가 되었던 그의 사진이 재평가를 받은 것은 2006년 독일의 슈타이들 출판사에서 출판한 그의 사진집 『early color』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이 사진집은 반세기 가까이 상자에 처박혀서 사장될 뻔했던 레이터의 컬러 사진을 정리, 복원한 것이다. 이후 미국과 프랑스에서 전시회가 열리면서 대성황을 이루었고 2012년에는 토마스 리치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가 60년 동안 거주한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아파트에는 필름 카메라 25대와 디지털카메라 26대, 미현상 필름 약 500 통과 회화와 흑백 사진  등 방대한 양이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약 8만 점의 컬러 사진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사후 사울 레이터 재단에 의해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그의 컬러 사진들은 20대 후반부터 약 60년간 살았던 그의 아파트 주변을 산보하면서 찍은 것들이다. 20세기 중반 ‘문화의 황금기를 지나는 뉴욕’을 담은 그의 사진들은 그 선명하고 강렬한 회화적 색채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해져서 시적인 서정성과 함께 회고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전시장을 나와서도 한동안 그 잔영이 머릿속에 남는다. 빨간 우산, 빨간 코트, 초록색 신호등, 잿빛 눈, 노란색 택시, 오렌지색 넥타이 등····. 그의 사진들은 대상을 흐리게 하거나 모호하게 만든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거리, 유리창을 통해서 보이는 풍경, 건물 사이나 문의 틈새로 보이는 원경이나 인물들이 많다. 또 인물들은 대체로 가려져 있거나 뒷모습을 보인다. 그는 ‘창문 너머로, 숨듯, 사람 뒤에서’ 찍기를 좋아한 것 같다. 흐리고 모호한 그의 사진들이 그래서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유명한 사람들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시장 벽에 쓰여 있는 그의 말이다. 그의 사진들이 대체로 세로로 긴 형태인 것도 특징적이다. 깊이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그 타고난 재능이 돋보인다.


 블로그를 쓰면서 사진 찍는 일이 많아졌다. 물론 휴대폰을 사용해서다. 내 딴에는 좋은 구도라고 생각해서 요모조모 각도를 맞춰 가며 찍는다고 했지만 막상 사진을 보면 애초에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피사체 또한 내가 뭘 보고 이 장면을 찍었을까 의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주변의 연출되지 않은, 우연인 듯한 일상 풍경을 순간적으로 포착해내는 레이터의 사진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그리기도 한 레이터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또한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畵, 에도 시대의 풍속화) 등 일본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긴 일본의 우키요에가 인상파 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잘 알려져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의 아파트에서는 많은 일본 예술품과 자료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레이터의 전시회가 유독 일본에서 성황을 이루었고 그에 관한 글도 많이 쓰인 것 같다. 취향이 비슷하다고 할 우리나라에서도 레이터 사진은 대단한 화제를 불러와서 당초 전시회가 3월 말에서 2개월 간 연장되었다. 전시회에는 그의 컬러 사진뿐만 아니라 모델이 되었던 그의 여동생 데보라의 사진, 연인이었건 솜스의 사진과 레이터가 찍은 사진이 게재된 패션잡지, 슬라이드 필름 등이 전시되어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시청할 수 있어 사울 레이터의 사진 예술에 대한 전모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복합 문화공간 피크닉(piknic)에 대해서 한 마디 보탠다. 회현동 언덕바지에 있는 이 건물은 1970년대에 지어져 제약회사와 창고, 사무실 등으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보수하여 재단장한 것이라 한다. 작은 입구만 보아서는 도저히 내부가 짐작도 되지 않는 건물 구조다. 4층 옥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윤광준의 책에 따르면 이 건물 안 카페의 긴 테이블과 샹들리에 등 내부 인테리어가 독특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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