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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May 18. 2022

아름다운 늙은이

노년 단상斷想3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옷차림과 자세, 용모 관리에 잔소리가 많아졌다. 나도 모르게 등이 구부정하게 걸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TV 나오는 고령의 누구누구 유명 인사나 집안 어르신들의 꼿꼿한 자세들을 예로 들며 자세 교정을 촉구한다(특히 예로 많이 드는 분이 요즘 한창 화제에 오르는 배우 윤여정 씨나 나보다 예닐곱 살이 위인 처삼촌 같은 분들이다). 그런 분들보다 훨씬 나이 어린(?) 사람이 벌써부터 그렇게 허리가 굽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타박을 한다. 외출할 때에는 자외선 차단 크림 바르기를  번이나 강조하고 아침저녁 세수 후에 발라야  화장품을 알려 주며 수시로 확인한다. 이태 전부터 얼굴 한쪽에 작은  같은 것이 생기더니 최근에는 점점 확대되어 가는 모양샌데 요즘 들어 그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화장품이나 피부약을 발라도 없어지지 않자 다른 지인들 사례를 들며 피부과에 가서 제거 수술을 거론하기도 한다. 하긴 며칠  어떤 모임에서 만난 지인  사람도 얼굴 여러 곳에 된장 바른  같은 모습을 하고 나왔기에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검버섯 제거 수술을 했다고 했다. 하나 빼는데  원인가 이만 원이라나, 요즘 그런 수술이 꽤나 유행인 모양이다. 외출할 때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그렇다.  옷을 입으면   옷을 입느냐고 하고  옷을 입으면  또한 못마땅해한다. 한동안 그게 적잖은 스트레스가 되었지만 요즘엔 군소리 없이 그저 정해주는 대로 입는다. 그게 편하다.  그게 옳은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복장에 어느 샌가 익숙해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 거리나 지하철 같은 데서 보게 되는 노년층의 옷차림도 전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예전엔 대체로 노인 남자들의 바지는 통이 크고 헐렁한  일반적이었다. 허벅지에 다리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헐렁했다. 아직도 그런 차림의 노인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젊은이들 못지않게 세련된 옷차림이 많다. 몸에  맞는 블루진 차림이나 캐주얼 복장의 노인들을 흔히 보게 된다. 머리는 백발이거나 성긴 머리숱이지만 멋진 헌팅캡을 쓰고 백팩 차림의 세련된 노인들이 많다. 아마 이런 복장과 차림새의 변화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도 있겠지만 나처럼 가족의 조언과 권유에 따른 점도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자신도 그런 차림에 익숙해져 예전의  넓은 바지나 소매 길이가 손등을 덮는 상의 같은 것을 어색하게 느끼게 되었다.      



요즘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는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도 그런 내용의 글을 썼다.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는 제목의 최근 글에서도 외모 미화에 대한 대목이 있다. 선생은 ‘아름다운 늙은이’로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외모부터 미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선생도 아침마다 세수한 뒤에는 90대 후반부터 사용하는 두 가지 화장품을 쓰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글의 핵심은 아름다운 늙음을 위해서는 이런 몸단장과 함께 더 큰 과제로 아름다운 감정과 정서적 건강을 거론하고 있기는 하다. 노욕을 줄이고 지혜를 앞세우는 일, 자제력을 높이고 침묵과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1960년대 중  고등학교 시절에 김형석 교수의 책을 읽었었다. 당시에 화제였던 『영원과 사랑의 대화』나 『한 인간의 이야기』 같은 책은 이제 그 내용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이 시대에도 예리한 안목으로 사회를 진단하고 삶의 지혜를 설파하는 노 철학자의 정정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지나간 날에 대한 반성과 성찰, 또 아름다운 늙은이로서 남은 인생을 슬기롭게 보내는 지혜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857만 명에서 2024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국민 5명 중 1명꼴이다. 20년 뒤엔 3명 중 1명이 노인인 세상이다. 그런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출판시장에는 고령화가 하나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노인 돌봄’을 소재로 한 소설이 하나의 장르가 될 만큼 인기라고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며느리와 딸,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등장하고 ‘노모의 연명 치료 중단을 둘러싼 갈등’, 간병 문제 등을 다룬 작품도 여럿 나왔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노년층을 겨냥한 큰 글자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존의 스테디셀러의 글자 크기만 키우는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아예 큰 글자 버전의 신간을 따로 만든다고 한다. 고령층 독자를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이라고 해야 하겠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9년 576종이던 큰 글자책 출간 종수는 2020년 1042종, 2021년 1410종으로 급증하고 있다. 책 읽는 일 말고는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는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자주 책을 빌려다 읽는다. 나 같은 나이에 책 읽는 데 가장 큰 장애 요인이 시력이다. 특히 밤에는 활자가 어른거릴 뿐 문장 해독이 어렵다. 당연히 책 내용이 파악도 안 되려니와 나중에는 머리가 아프다. 특히나 집에는 발행연도가 1970∼80년대의 것들이 많은데 글자 크기가 개미만 하다. 종이도 누렇게 변색되어 서너 줄을 읽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그런 책들을 꺼내서 초점을 맞추려다 보니 시력은 점점 나빠질 뿐이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 서가 한 편에는 큰 글자책이 따로 진열돼 있다. 양이 많지는 않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마다 그 서가를 흘깃거리면서도 선뜻 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혹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작은 글자책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나이 든 티’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내가 아직 그럴 정도의 나이는 아니다, 라는 심리였을 것이다. 이 무슨 허세인가. 큰 글자책 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망설임 없이 쓱 빼낼 만큼 많은 양의 큰 글자책들이 서가에서 자신을 데려갈 노인들을 기다리는 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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