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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May 26. 2022

제야祭夜

정성은 눈곱만큼, 바라기는 태산만큼?


제목으로 쓴 ‘제야’는 ‘제삿날 밤’이라는 의미의 한자다. 제야라면 12월 31일 자정에 거행되는 ‘제야의 종’이란 말이 떠오르기 십상인데 이때의 제야란 ‘제야除夜’, 즉 ‘섣달의 그믐밤’이라는 뜻이다. 나는 제삿날 밤을 한자어로 표기한 ’제야‘라는 단어에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다. 그 연유는 고등학생 때 당시 유명한 청소년 잡지이던 『학원』인지, 진학사에서 발간하던 대학 입시 정보 전문지 『진학』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은데, 그 잡지에 「제야」라는 소설이 실린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잡지사에서 공모하던 문학작품 당선작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나도 한두 번 그 잡지들에 소설이랍시고 써서 응모해본 기억이 있다. 입선에도 들지 못했었다. 어느 해인가 당선작 소설 제목이 「제야」였다. 그 소설을 읽지는 않았으나 「제야」라는 제목은 소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또렷이 기억되어 어떤 특별한 정서를 갖게 했다.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이었다. 올해로 59주기가 된다. 아버님은 5형제 중 둘째였다. 5형제의 자손들 중 백부의 장남인 사촌형님만 고향의 큰 집을 지키고 계실 뿐 나머지 형제들의 자손들은 대부분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출가한 딸들을 빼놓고도 사촌 형제들은 10명쯤 된다. 이 자손들이 제삿날(1년에 네 번)이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왔다. 아직 생존해 계시는 숙모님들과 해당 집안의 딸과 사위들까지 모이는 날에는 20명이 넘는다. 요즘 어느 집안이 이렇게 대규모(?)로 모여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을까? 이런 우리 집안의 제사 풍습에 경탄(?)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촌 형제들 간에 그만큼 우애가 깊다는 표시가 아니냐며 부러워하는 것이다. 아마 그런 찬탄의 이면에는 ‘며느리들이 고생깨나 하겠다’는 동정심도 있을 것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고향에 가서 같이 벌초를 하고 차례를 지낸 뒤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행사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던 것이 수년 전부터 그 양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삿날에 참석하는 안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 살림해가면서 평일의 제삿날에 참석하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의 식사나 뒷설거지 등의 노동이 예삿일이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기피(?)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그렇게 보였다). 하나 둘 결석(?)하는 일이 잦아지더니 최근에는 겨우 한, 두 집을 제외하고는 남자들만 참석하는 것이 상례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제사를 지내는 해당 집의 주부가 감당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차츰 볼멘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간소한 제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종교적 이유로 제사를 다른 방식으로 대치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감한 결정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 온 데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 내 모친이나 숙모님들을 생각한 처사이기도 했다. 그분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제사라고 하는 전통 관습에 대한 생각이 나 같은 아랫대 사람과는 다른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그 연로한 연세에도 각 집안의 제삿날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행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례는 그분들의 삶에서는 벗겨낼 수 없는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이런 제사의 모습을 바꾸었다. 구구절절한 이유를 댈 것도 없이 가족만의 간소한 행사가 당연시되었다. 아직도 여전히 전통적인 의례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이의를 제기할 일이 아니었다. 재작년, 작년 두 해를 그렇게 보냈다. 일 년 중 제사가 가장 빠른 집은 우리 집이다. 아버님 제삿날은 음력 4월에 있다. 올해 내가 하는 결정이 어쩌면 가이드라인이 될 터였다. 코로나19가 뚜렷하게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 정부가 거리제한을 철폐한 것이 5월 2일이다. 가족들만의 제사 이유로 코로나19를 댈 수는 없어졌다. 내심으로는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제사 풍습을 바꾸어야 한다고 마음먹고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적어도 어머님 세대가 생존하실 때까지는 종전과 같은 제사 풍습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건 안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생각이기에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넌지시 어머님의 마음을 떠보기도 했고 아내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우리 가족 셋이 코로나에 걸렸다. 더 이상 고려할 여지가 없어졌다. 종반들에게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작년과 동일하게 가족들만의 제사 계획을 통보했다. 10일 뒤에 오는 삼촌 제사도 가족끼리 지낸다는 사촌의 통보가 이어졌다. 그 역시 여러 달 전에 겪은 코로나 감염 등의 이유를 대긴 했으나 번거로운 제사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했다.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하반기에 삼촌 두 분의 제사가 있긴 하지만 아마 그때의 상황이 어떻게 되든 가족들만의 제사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외면적으로는 전염병의 창궐이 바꾼 의례와 풍습이라 하겠는데 한편으로는 아쉬움이나 허전함 같은 기분이 없지 않다.      



지난주 한국경제신문에 소설가 이문열 씨의 기사가 실렸다. 그동안 써온 90 편의 소설들을 새롭게 손질해서 새로운 출판사를 통해 전집 형태로 낸다는 소식과 함께 그의 문학 생활 45년을 회고하는 성격의 대담이었다. 이문열 씨의 고향(경북 영양) 바로 이웃이  고향이다. 행정단위를 넓게 보면  동네 사람이라고 해도 된다.  숙모  분은 이문열 작가와 가까운 인척이다. 나는 그분 작품의 상당수를 읽기도 했지만 그분의 사적인 생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길 들었었다. 그의 작품 내용이나 문체 등에서 보이는 ‘유교적 교양 대해서는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한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풍토와 환경, 정서 등에서 습득하고 축적된 자연스러운 체험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작가만큼 깊은 유교적 교양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일찍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사람이라 일상생활에 배어 있는 유교적 의례나 사상, 풍속에 대한 이해도 대단히 빈약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구석에 알게 모르게 잠재해 있는 유교적 덕목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이겠지만 이문열 작가의 소설 중에서도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나 대하소설 『변경』에 나오는 고향 사람들의 묘사 같은 대목에서  공감과 감동을 느낀다.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글에서 말하는 제사라는 유교적 의례와도 연관된 생각이 들어서이다.      



가까운 문중 친척 가운데는 의례와 풍습에 대한 깊은 소양을 가진 분들이 많다. 조상과 가문의 역사에 소상하고 의례에 밝으며 몸소 제문을 짓는 한문 소양을 지닌 분들도 많다. 한편으로 그런 소양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체득하려고 애를 쓰거나 노력한 적은 없다. 제사만 해도 그렇다. 경건한 마음으로 제물을 장만하고 의식을 진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굳이 예법이나 절차를 배워서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그런 안이한 자세가 경건하지 못한 것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해프닝도 많았다. 제사만 하더라도 몇십 년을 계속해오는 행사이면서도 아직 그 단순한 순서도 완전히 몸에 배어 있지 않다. 때로는 순서를 착각하기도 했고 빼먹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순서가 바뀐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수정을 하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식사를 하려고 숟가락을 들자마자 그 숟가락을 빼앗은 꼴이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내 고향사람들은 이런 의례의 예법을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하며 또 엄격하게 지킨다. 그런 분들이 볼 때 나 같은 사람은 조상에게 ‘무례’한 사람일 뿐이다. 때로 나는 혼란과 갈등 같은 걸 느끼지만 애써 이렇게 정리하곤 한다. 유교적 덕목의 어떤 대목들은 깊이 공감하고 기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틀에 박힌 형식이나 경직화된 사고에 대해서는 따르고 싶지 않다는 생각. 그런데 이게 맞는 말인지, 올바른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편리한 자기 합리화가 아니면 구차한 변명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다.  


        

 아무튼 이번 아버님 제사는 작년보다도 단출했다. 작년에는 제삿날이 주말이었기에 아들과 딸들도 참석했었지만 올해는 평일이라 달랑 우리 내외와 둘째 딸이 제관祭官의 전부였다. 나는 제삿날 조상님들에게 넋두리하는 버릇이 있다. 올해도 나는 아버님께 지난 한 해의 좋고 나쁜 일을 보고하고 올 한 해도 가족 모두 무고하게 잘 보내도록 도와달라고 소리 내어 빌었다. 정성은 눈곱만큼 들이고 보살핌은 한껏 받자는 못된 심보가 아닌가. 내년 아버님 제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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