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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l 08. 2022

다시 쓰는 일기 15 – 2022. 7. X

누구에게나 서러운 사연이 있다

 절친인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0여 년쯤까지는 같이 무전여행도 하고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등 각별하게 지낸 사이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제각기 사는 데 바빠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사이로 소원해졌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 만나는 빈도가 잦아졌다. 밥을 같이 먹고 찻집에서 잡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 친구나 나나 현업에서 벗어난 이후라 한가해진 탓이다. 친구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직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막내로 거의 고학하다시피 하여 대학교수까지 한 친구라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1970∼80년대 ‘루핑’ 지붕의 판잣집이 즐비하던 서울 변두리의 큰 형님네 단칸방 집 다락에 거처하던 그를 만나서 놀다 오곤 했었다. 그 시대는 너나없이 그렇게 살았기에 특별히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찾아오는 걸 꺼리지도 않았다.     



 오늘도 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카페에서 서로의 근황과 시국 이야기를 하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의 학위 취득과 교수 임용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과 고생담을 털어놓았고 자기 어머니와 형제들 이야기로까지 발전했다. 말년에 중풍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를 막내인 자신이 부양하게 된 사연,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간병과 비용 문제 등을 둘러싼 가족들(형제들과 형수들) 간의 갈등, 나아가서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겪은 외가의 비극 등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의 어머니와 형님 등 가족들은 학생 때 몇 차례 뵌 적이 있었지만 80년대 말부터 나는 해외 근무를 하느라 그와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교수 임용이나 그의 만혼晩婚 소식도 나중에 들었다. 어쩌다가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 친구는 잔잔한 목소리로 우여곡절 많은 사연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 잠시 말이 없었다.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그리고는 눈가가 붉어지고 물기가 고였다. 가슴이 북받치는 것 같았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랬다. 아마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한동안 노모를 모신,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할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가슴 깊이 묻어둔 아픈 기억이었던 것 같다.  


       

지난달에 만난 또 한 명의 고등학교 동창도 그랬다.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어쩌다 동창회에서나 보았던 친구인데 학교에 다닐 때는 꽤 가까이 지냈었다. 지지난달에 우연히 연락이 되어 얼마 전 친구의 사무실 근방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역시 친구의 집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발단이었다. 동생의 투병과 병간호 이야기, 동생의 사망 후 재산과 관련된 식구들 간의 갈등, 아직 생존해 계신 어머니를 비롯한 형제들 이야기 등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내게는 의외로 느껴졌다. 친구의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생에 대한 이야기에는 애틋해하는 심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이 친구에게도 이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런데 졸업 후 지금까지 만난 횟수가 10번 남짓 될까 말까 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장년, 아니 노년에 이른 남자의 심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 나이쯤이면 쌓인 것도 많고 회한도 많을 테니.       



두 친구 이야기의 공통점은 대체로 형제. 자매, 부모 등 가족과 관련된 것이다. 부모 봉양을 비롯한 간병 문제와 돈이나 재산 등을 둘러싼 형제(그 아내를 포함)간 갈등 같은 것이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그것들은 부끄러워 남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일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오랜만에 만난 나 같은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았을까? 아마 가슴에 쌓이며 응어리진 상처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런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말할 수는 없었을 테고 그래도 가깝다고 생각한 몇몇 친구를 그 대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미리부터 의도한 것은 아닐 테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우연히 시작한 것일지 모른다.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친구 이야기에는 내가 공감할 대목이 많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역시 누군가 가까운,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상대라면 가슴에 담아 둔 나만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치부를 드러내 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돌아서면 후회되기도 했다. 오히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블로그 같은 수단을 통해서 완곡하게나마 자신의 일부를 글로써 표현해 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나를 생각하면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어지는 친구의 애틋한 사연을 들었다.



 언제부턴가 오후 늦은 시각이면 어머니 방에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혹시 치매가 아닌가 하는 염려에 문 밖에서 가만히 들어보았더니 마치 방 안에 상대를 두고 하듯 독백을 하고 있었다. 그 상대가 오랫동안 의지해온 종교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다른 마음의 의지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독백의 내용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지난날의 어떤 사연들을 두고 하는 자책과 원망이거나 앞날에 대한 바람 말씀 같았다. 홀로 되어 60년을 살아오면서 맺힌 것은 얼마나 많겠으며 아쉬운 일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렇게 쌓인 것들을 마치 누군가가 마주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를 털어놓을  있는 친구가 있다는  다행한  일이다. 자신이 친구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줄 대상이 된다는 사실 또한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털어 놓을  없는, 이른바 말못할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가슴에 묻은  저승까지 가져가야  훨씬  많은 사연들 말이다, 랭보의  구절이 아니더라도 사람에겐 저마다 아픈 상처들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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