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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ug 13. 2022

다시 쓰는 일기 16 – 2022. 8. XX

<흰 구름 가는 길>

KBS 악단장을 지낸 김강섭 선생이 별세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마 내 또래 사람들에게는 낯이 많이 익은 분일 것이다. <가요무대>를 비롯한 KBS 가요 프로그램에서 악단을 지휘하는 모습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의, 안경을 끼고 머리숱이 많지 않던, 그리고 말수가 적을 것 같이 보이던 그 모습이 얼른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안 사실인데, 그분은 작곡가로서 내가 알 만한 여러 곡, 이를테면 <불나비>와 같은 명곡들을 작곡한 분이었다. 특히 <꿈나무>와 <흰 구름 가는 길>이 그분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아, 그랬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내 기억에 <꿈나무>는 KBS TV의 일일연속극이었다. 흑백 화면이었는데 풋풋한 젊음으로 세간의 인기를 끌었던  한혜숙과 하명중이 주연 배우로 나와 화제가 되었던 생각이 난다. 찾아보니 1971년도에 방영된 연속극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흰 구름 가는 길>이 그분의 작곡이라는 게 반가웠다. 이 노래는 나훈아 씨의 노래다. 이 노래도 1971년에 발표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내 기억에 라디온지 TV인지 연속극 주제가였던 것 같다. 나훈아 씨는 고향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그의 고향 노래 중에서도 특히 이 곡을 좋아해서 아마 내 평생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제목도 그렇고, ‘고향의 흙냄새는 언제나 나를 부르네’라던지 ‘기나긴 세월 속에 사랑은 시들어도 고향은 아늑한 엄마의 품이런가’ 같은 진솔한 가사와 서정적인 곡조는 들을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고 향수에 젖게 한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내륙 지방의 한 도시로 유교 윤리가 뿌리 깊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수 지역 중 한 곳이다. 이곳을 근거지로 몇 백 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집성촌이다. 그런데 고향이라고 했지만 내가 실제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그 마을에서 20리가 떨어진 시내(당시는 군 소재지) 주택가였고 또,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서울로 전학을 왔으니 그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아버지나 큰집 사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고향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아주 어릴 때는 명절이나 무슨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아버지를 따라갔었고, 그 후 서울 사람(?)이 되고 나서는 방학 때 내려가서 사촌들과 며칠을 머물렀으며, 성인이 된 이후에는 벌초나 성묘를 하러 가는 정도의 인연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향이라고 하면 어김없이 그곳을 떠올린다. 누가 물으면 으레 그곳을 고향이라고 소개하며 그리 풍성하다고 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추억들도 모두 다 그곳과 얽힌 것들이다. 특별히 풍광이 수려하거나, 이름난 성씨의 종갓집이 있는 이웃 마을처럼 기와집들이 즐비하고 기름진 들판이 펼쳐지는 동네도 아니지만 내게는 그곳이 늘 내 삶의 원형을 담고 있는 장소처럼 기억된다. 마을 뒤의 나지막한 산 중턱에는 정자가 있어 그곳 마루에 서면 동네가 한눈에 바라보였고 마을 앞 신작로를 따라 작은 개울이 흘렀다. 그 개울에서 멱도 감고 물풀을 꺾어 물레방아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문학잡지 『현대문학』의 현상 공모 장편소설 당선작으로 잡지에 연재되었던 이동하의 『우울한 귀향』이란 소설에는 귀향한 주인공이 마을의 개울에서 초등학교 여선생과 마주치는 대목이 몇 번 나오는데 으레 나는 그 장면에서 고향 마을 개울을 떠올렸다. 또, 이문열의 소설, 이를테면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같은 소설을 읽을 때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을 당연한 것처럼 내 고향 마을로 상상하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버스가 다니지 않던 시절이라 시내에서 큰집까지 아버지를 따라 20리 길을 걸어가야 했다. 때로는 캄캄한 밤길이었을 때도 있었다.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는 낙동강이 흘렀다. 지금은 강바닥이 보이도록 메마를 때가 많지만 그때는 제법 수량이 많은 물줄기가 교교한 달빛을 받으며 흘렀던 것 같다. 그 밤길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때로는 다른 친척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갔었을 것이다. 큰집은 종갓집은 아니지만 백부가 주손이어서 제법 규모가 있는 기와집이었다. 멀리서도 우뚝하니 눈에 띄었다. 당시에도 꽤 오래된 고가였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조부, 조모가 생존해 계셔서 그 집에 거처하셨다. 토담길을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면 중문 앞 돌계단에서 굽은 허리를 펴며 반겨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 먼저 간 아들(내 아버지)을 그리워해 늘 사랑방 미닫이를 열어놓고 아들의 묘가 있는 앞산을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안채 대청마루에서 “ㅇ이’ 오나”(그 지방에서는 이름을 부를 때 마지막 한 자만 부른다)하고 반겨주시던 백모 생각도 난다. 세월이 너무 지나 지금은 동네 이곳저곳에 양옥집들이 들어서 있고 무슨 사료 공장 같은 건물이나 펜션 비슷한 시설도 들어서서 엣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조부도 조모도 백부와 백모도 세상을 떠나신 지 오래다. 이제는 그 옛날의 정겹고 푸근하던 마을도 집도 사람도 만날 수 없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늘 그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고향이다.      



며칠 전 정영주 개인전을 보러 갔었다. 화가는 15년 가까이 달동네 그림을 그려왔다고 한다. 화랑 안에 걸린, 크게는 194x59cm부터 작게는 41x53cm에 이르는 크고 작은 캔버스에 판잣집들이 빼곡했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바뀌었을 뿐 화면은 언덕 너머 산 너머, 끝도 없이 펼쳐진 판잣집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 남루한 판잣집 동네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골목골목마다 서 있는 가로등 불빛과 집들의 창문을 통해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 때문이다. 마치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날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림들 앞에 서서 상상을 한다. 저기 보이는 저 집들 중 어느 집에서는 이제 막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가족들과 밥상을 둘러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겠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이웃집의 경사 소식을 전하고 있거나,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의 학교생활을 묻고 있지 않을까? 또 어느 집에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끝낸 식구들이 모여 앉아 어머니가 군에 간 큰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어 주고 있거나, 무릎을 베고 잠이든 어린 손자를 위해 할머니가 부채질을 해주고 있을 거야····      



지나간 시절을 아름답게 회상하는 건 단순히 시간의 경과에 따른 미화美化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풍경 속에 담겨 있는 가족들 간의 따뜻한 정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삶에 위로가 되고 고단한 날들을 헤쳐 나갈 기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나간 세월이 모두 다 아름답고 그리운 것들이기만 하겠는가. 그러나 시간은 그런 불편한 추억까지도 풍화시켜 그리움으로 변모시키는 마술 같은 기능이 있는 게 아닐까. 그가 태어난 고향이 어디이든, 또 그가 살았던 장소가 어디이든 그 추억은 아름답고 소중하다. <흰 구름 가는 길>을 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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