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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ug 28. 2022

다시 쓰는 일기 17 – 2022. 8. XX

한 시인에 대한 짧은 생각

최승자 시인은 나와 동년배이다. 오래전부터 시인의 이름은 알고 있었고 간간이 그의 시에 대한 ‘비평’들도 읽은 적이 있다. 더욱이 친구 중 하나가 시인이 나온 대학의 인문대학(전공 외국어는 달랐지만) 출신이라 그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내게는 조금 남다른 느낌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 친구와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동안은 부지런히 얼굴을 마주했으나 서로의 삶에 바빠 언제부터인가 몇 년에 한 번 정도 안부나 묻는 관계가 되고 말았는데, 그럴 때면 꼭 나는 최승자 시인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곤 했다. 주로 내 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편인데 대부분 이 시인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였다. 그러니까 최승자 시인에 대한 기사나 책을 읽고 나면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안부를 묻곤 한 것이다. 얼마 전에도 최근에 출판된(재출간된)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을 읽고 나서 불현듯 그 친구가 생각나서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근황에 대한 안부를 주고받은 후 친구는 ‘그 나이에 아직도 열심히 독서하는 네가 가상하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시인에 대한 말은 따로 없었다.      



최근 나는 앞에서 말한 책뿐만 아니라 역시 재출간된 시인의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일기』와 시집 몇 권을 읽었다. 느닷없이(?) 시인의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은 것은 황현산 교수의 책 『우물에서 하늘보기』에 실린 최승자 시인에 대한 글 때문이었다. 최승자 시인의 삶이 범상(?)하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황 교수의 글에서 읽은 시인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무엇 때문에 시인은 그렇게 처절한 환경에까지 처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최승자의 어깨’라는 제목이 붙은 황 교수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그러니까 2010년 12월이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날, 뒤풀이를 끝내고 포항으로 다시 내려가는 최승자를 배웅하며, 나는 그 가냘픈 어깨에 얹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였다. 허공에 있는 가랑잎을 쥐는 것만 같아 힘주어 붙잡을 수 없었다. 이 욕망의 거리에서, 아무것도 쌓아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이 없는 사람만이 마침내 그 슬픈 어깨를 얻는다고 해야 할까. 끌어안기조차 어려운 이 어깨,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야 할 어깨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당시 시인은 포항의 한 정신 치료원에 입원해 있었던 것 같다. 동년배의 김정환 시인이 ‘승자야 승자야 네 이름이 승자가 아니더냐’ 하며 안타까워한 글도 읽었다. 시인의 이름 勝子를 ‘이기는 자勝者’로  쓴 것이다. 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내가 그의 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할 수 없으나 그의 절망과 불화는 정치적 ·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폐쇄된 현실과 물신숭배적인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과 허위의식 등에 대한 극히 예민한 반응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중반에 처음 발간된 두 권의 산문집에서도 죽음, 불행, 절망, 상처, 공포와 같은 단어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특히 점성술, 역학, 도가철학, 사상의학 등에 관한 관심과 전문가적인 이해가 눈길을 끌었다. 이후 시인이 어떤 곡절로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시인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어떤 연민(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이랄까 이해,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더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역학이나 점성술 등에 관한 시인의 집착에 유독 관심이 갔다. 물론 시인은 단순히 어떤 개인의 운명을 점치기 위한 역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책에서 시인은 말한다. ‘나는 이 우주와 우주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 이 지구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 우리 몸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현상, 이른바 병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현상(징후)들, 그리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몸이라는 이 특수한 생명체와 지구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가 어떤 특정한, 같은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하며, 그 원리를 알고 싶다’고 말한다. 시인이 이 글을 쓴 게 1995년이고 황현산 교수의 책은 2015년에 출간되었으며, 그로부터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작년 말에 예전에 나온 산문집 2권이 재출간되었는데, 이즈음의 시인의 생각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하던 원리를 알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으며, 한편으로 운명이랄까 삶의 곡절에 대한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되었다.


퇴직 후 한 동안 동네 도서관에서 역학 책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었다. 나 자신이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삶(최승자 시인의 표현으로 하면 모든 생명체)이 어떤 특정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 공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주 정설』이라는 오래된 책으로 시작했는데 모두 다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간지와 오행의 수많은 조합 방식에 따른 법칙은 복잡하고 다양해서 이 기본원리를 한 번 읽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되었는데 녹슨 머리로 그것들을 다 외운다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공부는 몇 달 가지 않아 흐지부지해졌다가, 다시 달려들었다가 하는 반복 끝에 결국은 팽개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미련은 남아 좀 쉽게 쓴 다른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유튜브 강의를 듣기도 하는 등 발버둥(?)을 치다가 중단했는데 최근에 최승자 시인의 책을 보고 나서는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김용옥 선생의 『주역 강해』가 출간되었고 유튜브에서 선생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어 듣고 있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 아니다’라고 선생은 강조하고 있다. 이 나이가 되어 자신의 앞날의 운세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은 없으나 ‘이 세상과 인간이 어떤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건지’는 궁금하다.        



시인의 산문집 두 권의 표지에는 야윈 모습의 시인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과 커피 머그 잔을 입에 대고 있는 사진이 각각 실려 있다. 그 사진들이 눈에 밟힌다.


<덧붙이는 글 : 신형철 평론가의 시화집 『인생의 역사』에 실린 최승자 시인에 대한 두 편의 글을 읽었다. 

최승자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압축적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202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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