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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Dec 19. 2022

다시 쓰는 일기 20 – 2022. 12. XX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이 해도 이제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큰딸을 통해 브런치에 대해 알게 되어 글을 올린 이래 1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올린 글이 50개가 되었는데 그중 열몇 개는 블로그에 같이 올린 것들이었다. 당초 올렸던 글에서 두 개는 삭제하였다. 하나는 실수로 또 하나는 자의에 의해서였다. 처음 시작하고 얼마간은 한 달에 너 댓 개를 올리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줄어들어 어떤 달은 겨우 두 개를 올리는데 불과하였다. 소재가 달리기도 했고 처음의 의욕에서 멀어져 나태해진 탓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글의 대부분이 극히 개인적인 성격의 것들로,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는 내 삶을 회고적으로, 관조적으로, 그리고 반성적으로 토로한 것들이었다. 일기 형태를 빌린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거나 지난 한 시절의 내밀한(?) 추억담들이 많았다. 청승맞기도 하고 억지로 만든 글이라는 인상도 주었다. 이런 형식의 글쓰기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리 긴 시간을 살아왔다 한들 이야기로 풀어놓을 만한 소재는 한정되게 마련이고 사금파리 같이 반짝이는 대목이 없는 밋밋한 일상 이야기는 지루하고 억지스러울 뿐이다. 애초부터 내가 쓰는 글은 이런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해야겠다. 전문적인 정보을 담은 담은 것도 아니고, 삶에 교훈이 될 만한 경험담이나 교양을 높일 지식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문장이기라도 하면 읽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그도 아니다. 무엇보다 경험적 사실과 사건만을 늘어놓는 글쓰기 방식의 한계를 한탄해야 할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이 대부분인 노년의 삶에서 사색과 사유, 상상력의 바탕이 없는 글쓰기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글을 올리는 간격이 자꾸 벌어지는 것도 그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만 내 블로그나 브런치의 아이디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브런치를 소개해준 큰딸과 오래 사귄 직장 선배 한 분이 있을 뿐이다. 인터넷에 뭔가 글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지 몇 사람이 “우리가 ‘좋아요’ 눌러줄 테니 아이디를 알려달라”라고 할 때마다 나는 완강히 거절한다. 스스로 생각할 때 내가 쓴 글 중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그리고 가장 공들여서 쓴) 글이라면 ‘추억담’일 것 같은데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이런 내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블로그에는 이웃이 있고 브런치에는 구독자가 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는 2년 반이 되는데(150여 개의 글을 올렸다) 내 이웃은 2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수백 수천 명의 이웃을 가진 블로거들이 수두룩한데 고작 20명에도 못 미친다니! 그중 2명이 나를 아는 사람들(작은 딸과 직장 선배)이고 나머지는 고맙게도 나를 이웃으로 삼아 준 분들이다. 나는 ‘서로이웃’은 하지 않는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디를 알려주지 않고, 블로거들끼리의 서로이웃은 마다하니 일방적으로 나를 이웃으로 삼아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유명인사나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특별하게 눈길을 끌 만한 내용도 없는 수십수백 만 명의 장삼이사 블로거 중의 한 명인 나를 자석으로 생각하고 쇳가루처럼 달라붙어줄 이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내 독자는 3명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중 한 사람은 큰딸이다. 내 관심작가는 1명인데 브런치 운영자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나는 브런치의 글들을 제법 열심히 읽었다. 요즈음은 거의 읽지 않는다. 이유라면 두 가지겠다. 하나는 좋은 글이 너무 많아 (그 실력에, 그리고 글뿐 아니라 감탄할 만한 표지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리고 본문 디자인 능력에) 기가 질려서이고(화도 나고), 다른 하나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잘 쓴 글이라면 공부 삼아서라도 열심히 읽어야 할 텐데 그럴수록 주눅이 들고 나 자신이 한심해지기 때문에 애써 멀리한다. 그러니 자꾸 우물 안 개구리 꼴이 된다. 하루에도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은 너무 많아서 그날(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지난 글들은 관심 밖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새로운 글들이 홍수처럼 밀려와서 이전 글들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뉴스처럼. 그러니 관심작가 지정이 필요한데 역설적으로 나는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으니 이율배반이다. 남의 글은 읽지도 않고, 지인들에게 알려 구독자를 늘릴 전략적인 방법도 외면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글이 읽힐 만한 매력도 없는 것(이게 가장 치명적인 이유다)이 지금 브런치에서의 내 위치인 듯하다. 그런데 앞으로도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는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 이를 악문다고 글재주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니 하루하루의 쇄말적인 일과를 포장지만 바꿔서 내놓거나 바닥을 드러내는 추억들을 박박 긁어서 간신히 이야기 한 꼭지를 만들어내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마 소재는 점점 바닥이 나고 발표(?) 간격은 길어지면서 초조한 마음은 더해질 것이다. 공백이 길어지면 <작가님의 ’꾸준함‘이 ’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라는 브런치 운영자(?)의 독촉 말씀이 날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마음은 더 급해지겠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을 돌아본다. 블로그와는 달리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아무런 장식 없이 글 위주로 표현하는 데 적합한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게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브런치는 내게 노트이고 원고지다. 딴에는 머리를 짜내고 고심을 거듭하여 만들어 낸 글이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때(그런 느낌을 받을 때) 맥이 빠지기도 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표현 욕구 충족이라는 목적은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담은 글들은 어쩌면 내 자서전이자 인생 기록이기도 하다. 포기하지 않고 벽돌 쌓듯 쌓아가는 글들, 그것들이 내 유산이 될 것이다. 훗날 가족들이 브런치에 쌓인 100개, 200개의 기록들을 읽어 보면서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겪은 삶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자료가 된다면 그 의미가 작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나를 위한 글쓰기’로 시작한 것이니 목숨 다하는 날까지 꾸준히 써야 한다.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그냥 쓰고 싶은 글을 써나가야 한다. 마무리가 꽤 감상적이 되고 말았지만, 그것이 이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짐하는 각오 중 하나이다.   

  

(작은 제목은 이문재의 시 <노독>의 한 구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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