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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an 31. 2023

아름다운 것들

노년단상 9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그리 크지 않은, 낡은 여행 가방이 하나 있다. 보물 ‘처럼’ 아낀다고 했으니 보물이 아닌 건 분명하다. 가방 속에는 스크랩해 놓은 신문들과 오래된 연극 팸플릿, 그리고 몇 장의 편지와 엽서가 있으며, 아이들이 어릴 때 쓰던 스케치 북과 공책 몇 권이 들어 있다. 대학 3학년 때인가 원고지에 쓰다 만 50매 정도의 단편소설도 있다. 가방 안의 스크랩은 문화 · 예술과 관광 · 레저에 관한 신문 · 잡지 기사들을 담은 몇 상자 분량의 스크랩과는 별도로 (내 나름대로 선정한) '유명' 인사들의 타계 소식 기사들만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연극 팸플릿은 대부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것으로 대학 연극반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기에 모은 것들이다. 연극반에서 공연한 작품들의 포스터, 팸플릿과 사진 몇 점을 비롯해, 그 시절 ‘미친 듯이’ 보러 다녔던 많은 연극들의 팸플릿과 입장권이 들어 있다. 당시 작품에 등장했던 연극인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하긴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니 그럴 수밖에.     



내가 왜 유명 인사들의 죽음의 소식들만을 따로 모아 놓게 되었는지 그 계기는 잘 모르겠으나 처음 모으기 시작한 건 15년여 전쯤 되는 것 같다. 가방을 꺼내 뒤적여보니 제일 오래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기사다. 그러나 정치가로는 김대중 대통령 외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문인과 예술인 등 문화계 인사들이다. 대충 훑어보면 문인으로는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최인훈, 시인 김지하 등과 문학평론가 김윤식과 김치수, 그리고 작년, 올해 세상을 떠난 김성동, 이어령, 조세희 등이 있다. 문인 이외로는 영화배우 신성일, 윤양하, 작년에 타계한 강수연, 최근에 세상을 떠난 윤정희 등이 있고, 그 밖에 작곡가 박춘석과 가수 이동원, 최근에 타계한 만화가 박기정에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야구인 김영덕까지 그 숫자가 적지 않다. 프랑스 배우 장 폴 벨몽도와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이탈리아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 브라질 축구선수 펠레 등 외국인도 있다. 그중 어떤 분은 신문 전면의 사진(전직 대통령의 경우)과 함께 서, 너 면에 걸쳐 관련 기사가 소개된 반면 하단에 손바닥 만 한 작은 크기의 기사만 나온 경우도 있다(아예 기사조차 나지 않은 분들도 있다). 나는 가끔 이들 ‘역사 속’ 인물들의 사진과 기사들을 꺼내서 다시 보며 내가 한 때 그들의 책을 열심히 읽었고, 그들의 영화를 열심히 보았으며,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그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겨보곤 한다.      



내게는 아이가 셋 있다. 첫째와 둘째는 딸이고 마지막이 아들이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아이들 작품(?) 중에는 막내의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스케치 북이 있다. 제법 그림 솜씨가 있어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던 것들이라 (꼭 그 이유만은 아니지만) 버리지를 않고 이날까지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 · 고등학교 때 받은 상장도 거의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다(아마 이런 정도는 많은 부모님들이 보관하는 것들이리라). 첫째와 둘째는 어렸을 때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국제학교를 다녔다. 내가 그곳에서 3년 남짓 주재근무를 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때였고 둘째는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영어라고는 알파벳조차 익히지 못했던 아이들이 갑자기 국제학교에 들어가서 한 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었다(작은 아이는 1년간 영국계 유치원에 다닌 후에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언어 습득이 빨라서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또, 아이들 중에 한국 아이들이 더러 있어서 그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타국의 낯섦도 이내 잊고 학교 생활을 즐거워했다.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들은 그 시절 두 아이가 사용한 영어 공책들이다. 처음 단어를 베껴 쓰는 것을 시작으로 짧은 문장을 만들고 이윽고는 일기를 적을 수 있었으며 선생님과 서양 친구들과 어려움 없이 대화하고 발표하고 스스로 숙제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지금 그 노트들을 읽어 보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간 외국어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이 내가 그들의 어릴 적 노트를 보관하고 있는 줄을 어렴풋하게는 짐작할 텐데 실제로 그것들을 보게 되면 그들도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에 주요한 통신수단은 손 편지였다. 생애의 상당 부분을 아날로그 시대에 살아온 나 역시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수많은 편지를 써 보냈고 또 받았을 것이다. 어릴 때 위문편지도 썼을 것이고 서울에 혼자 올라온 이후로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썼을 것이다.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는 없다(없는 것 같다). 연애결혼이 아니었던 데다 맞선을 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해서 결혼 전에 편지를 주고받을 기회는 없었겠지만, 늘그막에 일본에서 혼자 지낼 때도 나는 편지(이메일도) 한 장을 보낸 적이 없으니 참 무심한 남편이었다(변명하자면 그 시절은 이미 전화와 카톡 등이 주된 통신수단이었다). 아무튼 지금 내가 보관하고 있는 손 편지는 두 장의 엽서와 아이들이 내게 쓴 편지 몇 장뿐이다. 두 장의 엽서는 사십 수년 전 어느 여학생이 보낸 것이다. 한 잡지에 투고해서 실린 내 글을 보고 보낸 것이다. 그 엽서에 내가 답장을 했었고 다시 그분이 그에 대한 답장을 보낸 것인데, 그 독특한 글씨체와 감성적인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물론 내가 보낸 엽서는 있을 리가 없다. 당시 내가 써 보낸 엽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아이들이 쓴 편지는 10여 년 전 내가 단신부임으로 일본에서 근무할 때 방학을 이용하여 다녀갈 때마다 써 놓고 간 것들이다. 적막강산처럼 지내다가 한동안 아이들 덕분에 사람 사는 것 같았는데 다시 혼자가 되어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면 가슴이 뭉클했고 적적함은 더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의 편지들을 모두 모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세월이 지나 언젠가 자신들이 쓴 편지를 읽어보면 그들 또한 아련한 마음이 들며 옛 일이 떠오를 것이다. 편지는 아니지만 기념사진첩이 몇 권 있다. 부서를 이동하거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때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함께 찍은 사진들과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 같은 것을 적어서 만든 사진첩이다. 막내아들이 대 여섯 살 때였던 것 같다. 송별회를 마치고 받아온 사진첩을 보고 심각한 얼굴로 제 엄마에게 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첩에 한 여직원이 인사말 마지막에 “부장님 사랑해요”라고 적었었는데 아들이 그걸 보고 “엄마 이 누나가 아빠를 사랑한대, 어떻게 해? 엄마.”하고 걱정했다는 말이다. 간혹 TV방송 같은 데서 수십 년간 주고받은 손 편지를 '와이셔츠 상자갑'에 보관하고 있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본다. 먼 곳으로 일 떠난 남편의 편지, 군에 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이 보내온 편지들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이메일이나 인쇄된 소통문疏通文들이 대세인 시대에 손 편지는 얼마나 소중한가. 훌륭한 문장이든 치졸한 문장이든 손편지에는 저마다 다른 글씨체에 저마다의 고유한 마음이 담겨 있어 읽는 사람에게 오래오래 기억된다.        



며칠 전에 방영된 KBS의 열린 음악회는 송창식과 양희은의 특집이었다. 두 사람의 긴 세월에 걸친 우정과 아름다운 노래가 감동적이었다. 두 사람과 같이 출연한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가 opening 음악으로 양희은의 노래 ‘아름다운 것들’을 연주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브런치 제목을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적었다. 내 허름한 가방에 담긴 것들 또한 (내 나름으로는)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표지 사진은 추사 김정희의 편지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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