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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Nov 23. 2021

무코다 쿠니코向田邦子


무코다 쿠니코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0년부터 3년 반 동안 두 번째 일본 생활을 하면서였다. 그녀의 수필집을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쓴 방송 드라마 DVD를 사서 보게 되었다. 그녀는 1981년 대만 취재 여행 중 항공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사망한 지 30년이 된 작가인데도 서점에는 그의 책들이 여전히 많이 나와 있었다. 그녀가 쓴 책이나 TV드라마뿐만 아니라,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재조명,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회고담 등이 책과 영상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일본의 출판계나 문화계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녀뿐만 아니라 과거 일본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관심은 세월이 지나서도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문화시장의 상술의 한 형태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그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왜 그녀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1929년생인 그녀가 산 시대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하고 미군정 시대를 거쳐 급속도의 경제발전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는 시기에 걸쳐 있다. 드라마작가로 시작한 그의 작가 생활은 1960∼70년대에 집중되는데, 그녀가 즐겨 다룬 소재는 전쟁 전후前後 쇼와(昭和는 일본 연호로 1925년에서 1989년까지를 말함) 초기 일본의 중산층 소시민 가족의 모습이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에 대한 회상을 바탕으로 당시의 말과 음식, 생활도구, 가족 모습 등의 일상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다.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끈끈한 가족 간 유대감이 특히 식사 풍경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생생하게 묘사되고,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역으로 마중 나가던 일, 툇마루, 장지문, 장작 피우는 목욕탕, 마당과 징검돌 등의 집 풍경을 작가는 그리움으로 회상하고 있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60년대 중반에는 이미 그와 같은 모습은 점차 사라지던 시기였다. 작가는 1964년 도쿄올림픽 무렵부터 사라지기 시작해서 버블 경제 후에 완전히 사라진 전전쇼와(戰前昭和) 시대에 대한 향수鄕愁를 글과 드라마에 담았다.



그녀의 첫 수필집이자 대표적인 작품집으로 평가되는 『아버지의 사과문父のお詫び状』에는 표제작을 비롯한 그녀 특유의 감성적이고 섬세한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밤중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던 내가 목격한, 자녀들의 등교 준비를 위해 거실에서 필통을 늘어놓고 사각사각 연필을 깎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라든가, 자신이 잡은 붕어와 잉어 같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보여주어 기쁘게 해 주려고, 손재주가 별로 없던 아버지가 ‘고군분투’하며 정원에 꽤 큰 연못을 팠었는데, 이윽고 시멘트가 마르고 물을 채운 순간 아들이 물에 빠져 이마를 부딪치면서 큰 혹이 나는 불상사가 일어나자, 아버지는 그렇게 힘들게 만든 연못을 그날 밤에 메꾸어 버리는’ 모습 등에서 보여 지는 따뜻한 가족애 등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무코다의 아버지는 요즘으로 하면 중학 정도의 학력으로, 보험회사 급사給仕로 출발해서 오로지  성실성과 책임감으로 간부 직원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다. 저자가 쇼와 시대의 아버지 상이라고 말한 대로 무코다의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회사인간이라고 불릴 만큼 회사 일에 전력을 다하고, 처자식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며, 말이 없고 무뚝뚝하며 권위적이고 자식들에게 엄하며, 아이들 기저귀   갈아준 적이 없지만 자식 사랑은 끔찍한사람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지 않은가! 「아버지의 사과문」이 이런 아버지 상을 묘사한 대표적인 글이다. 보험회사 지점장으로 일본 각지를 전근하던 아버지가 센다이지점장이던 때였다. 직원들을 격려해서 보험 실적을 올려야 하는 아버지는 지점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회식을 하는 일이 잦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일본 동북지방의 센다이는 겨울 추위가 유명하다),  날도 집으로 직원들을 초대해서 회식을  날이었는데 밤이 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지고 어머니와 딸은 손님들 접대에 분주했다. 새벽에 잠이  무코다가 방을 나와 보니 어머니가 현관에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긁어내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손님들의 토사물이었다. 아마 화장실에 간다고 나왔겠지만 그대로 현관에다 토해버린 것이다. 일본집들은 좌우로 밀어서 열고 닫는 현관문의 구조로 문을 열면 바로 밖이었다. 문을 열어 놓은  칼바람을 맞으며 어머니는 꽁꽁 얼어붙은 토사물을 칼로 긁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무코다는 ‘보험회사 지점장과 가족이란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분노가 치밀며 어머니와 함께 토사물을 긁어낸다. 마침 화장실을 다녀오던 아버지가 그런 모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서서 보다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던 무코다는 개학을 앞두고 집을 떠나는데 아버지가 정거장까지 배웅을 나왔다. 아버지는 그날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딸을 배웅했다. 며칠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다. 일반적인 안부 말끝에  ‘이번에 정말 애썼다 짤막한 글 한 줄이 있었는데 이 대목에만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원문은 此の度は格別の御働き인데  의미를 적절하게 번역해내기에는  실력이  미치는  같아 유감이다 - ‘미안하다거나,  잘못이었다’, 등의 사과나 유감의 표시가 아닌 아버지의   문장이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렇게 완곡하게 표현한 것인데, 그것이 쇼와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상징해서 보여주기에 무코다가 그런 수필을 썼을 것이다.     



무코다 쿠니코는 60∼70년대 대표적인 TV 드라마 작가로 꼽힌다. 그녀는 수많은 인기 드라마를 썼는데,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데라우치 간타로寺内貫太郎一家」를 든다.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2∼3회 분을 보고는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 작품에 앞서 1970년에 방영된 「다이콘노하나だいこんの花무우꽃)」는 여러 번 보고 또 보았다.

「다이콘노하나」는 처와 사별하고 외아들과 둘이 사는 퇴역 해군 대령의 부자父子 간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동네에 사는 과거 군복무 시절의 부하들과 그의 가족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유머러스하고 따스하게 그린 감동적인 작품이다. 그 작품에 나오는 퇴역 해군 대령 역은,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모리시게 히사야(森繁久彌)가 연기했는데 그 걸출한 배우의 뛰어난 연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7개의 DVD로 된 「다이콘노 하나」를 여러 번 보았다. 볼 때마다 새로 보는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코믹한 연기에는 많이 웃기도 했고 부자 간, 이웃 간의 진한 정情에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1929년생인 무코다 쿠니코는 독신으로 살다가 1981년 항공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비문은 앞에서 언급한 배우 모리시게 히사야가 썼다. 내가 왜 무코다의 글과 드라마를 그렇게나 열심히 보았을까? 그 글과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과 이야기에서 내 아버지 세대와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을 떠올려서가 아니었겠는가? 「다이콘노하나」와 무코다의 책들을 다시 꺼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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