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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30. 2023

‘자기만의 방’

알다시피(이 말을 쓸 때마다 멈칫하곤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이 말에 이어지는 내용을 모를 때, 아, 남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가 본데 나는 모르고 있구나 하는 낭패감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쓴 ‘자기만의 방’은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에서 한 강연을 토대로 쓴 에세이  제목이다.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수입과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울프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 있고,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다고 하며 여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고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다’며 그런 이유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강조한다고 적었다. 아마 자기만의 방의 의미가 ’지적 자유‘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이 글을 다시 읽고 꼭 당시의 여성에 한정된 것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해당될 ’자기만의 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직도 자기만의 방이 없다. 2년 전 막내아들이 직장 근처의 원룸으로 독립한 이후 그 방을 내 방으로 쓰고는 있지만 그 방은 여전히 아들의 책상과 책과 물건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다(아들이 집에 올 때면 나는 방을 내어주고 안방에서 지낸다). 나는 잠시 아들의 방을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결혼을 하고 내 집이라고 마련하고 나서도 한참 세월이 지난 이즈음의 사정도 이러하니 이전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건 나뿐 아니라 6∼70년대를 산 상당수의 서민 가정이 그랬다. 방 하나(많아 봐야 2개)에 네, 댓 식구가 같이 지내는 건 일반적인 경우였다. 그런 형편에 내 방이라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TV연속극을 본 사람은 그런 풍경이 쉽게 짐작될 것이다. 30대 초반 서울 접경 지역의 경기도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기까지 셀 수도 없이 옮겨 다닌 집은 언제나 단칸방(그중 2년인가 3년 정도는 방 두 칸)이어서 그 방이 남동생을 포함한 ‘삼모자三母子’의 침실이고 거실이고 식당이고 공부방이었다. 둥근 상 하나가 밥 먹을 땐 밥상이었고 공부할 땐 책상이었다. 지금이야 종이 상자이지만 예전에는 과일 담는 상자가 나무로 만든 것이었는데 얇고 긴 판자 여러 개를 이어 붙인 직육면체의 상자였다. 그런 사과 상자 하나가 어디서 생겼던지 그걸 옆으로 뉘어놓고 위에는 달력 종이를 덮어서 내 ‘책상’으로 삼은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그 책상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했었던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익숙하던 그런 생활도 나이가 들면서는 불편함을 느꼈을까 대학에 다닐 때는 집에서 자는 날이 일주일에 사나흘이 될까 말까 했을 만큼 밖으로 나돌았다. 그러다가 내 집을 마련하고 단칸방을 면해서 한, 두 해 자기만의 방을 가졌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내 방은 없어졌다. 이후 몇 년 간의 해외생활을 거쳐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서 방의 수는 늘어났지만 이제 방은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의 ‘자기만의 방’이었다. 잠을 자고 TV를 보고 밥을 먹는 공동의 공간은 있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는 내 공간은 없었다. 막내의 방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곳이 자기만의 방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아들이 올 때마다 옮겨가야 해서만이 아니다. 작은 방이어서 침대와 책상, 그리고 작은 옷장과 책장 하나를 놓고 나면 지나다닐 통로가 겨우 생길 뿐인 작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진정으로 내 방이 되려면 내 책상과 내 책들과 내 수집품들과 내 손때가 묻은 잡동사니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내 공간으로서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나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물론 이만한 공간이라도 있는 게 대견은 하다). 자기만의 방이 꼭 내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동네 문화교실에서 민화를 배운 지 오래된 아내도 늘 자기만의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한동안은 거실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쳐 놓고 그리더니 집중이 안 된다며 요즘은 안방에 탁자를 놓고 그린다. 아내가 그림을 그릴 때는 안방에 가는 일도 조심스럽다. 붓글씨를 쓰러 다니는 나도 그렇다. 긴 종이를 펼쳐 놓고 쓸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다. 거실 바닥과 아들 방의 좁은 공간을 옮겨 다니며 쓰는 일이 번거로워 아예 집에서는 연습조차 하지 않는다(아내의 말대로 이는 내 게으름의 핑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언젠가 방송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안방은 아무래도 아내의 공간이라고 봐야 하니 남편이 퇴근 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보도록 권했다. 공간이 부족하면 베란다에라도 꾸미라고 했다. 그곳에서 게임을 하든지 공상을 하든지 잠을 자든지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용도로서의 공간을 말한 것일 텐데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조선 시대에는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사대부의 경우이긴 하지만) 각자의 공간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아내의 공간은 안방으로, 남편의 공간은 사랑방으로.      



며칠 전 유튜브에서 몇 년 전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생전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선생의 자택 서재에서였다. 선생의 말보다도 선생의 서재가 기억에 남는다. 한강 변의 고층 아파트였는데 서재 한쪽의 넓은 창으로 한강이 보였다. 저런 서재에서라면 공부가 저절로 되겠고 글이 저절로 써지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서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았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자기 집의 서재를 놔두고도 별도의 장소(오피스텔 같은 곳)를 마련하거나 (일시적이지만) 비앤비 같은 공간을 이용해서 글을 쓰는 문인들의 경우를 보게 된다. 집 안에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 해도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식구들이 있고(혼자라 해도 방문객이 있을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있을 것이며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물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롯한 자기만의 방이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고 해야겠다. 그게 만 권의 책이 진열된 넓은 서재든, 다락방이든, 산속 깊은 암자의 한 평 선방禪房이든, 베란다에 칸막이를 쳐서 확보한 한 뼘의 면적이든 단지 물리적으로 확보된 방의 의미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평온함과, 어쩌면 역설적으로 외로움과 고독감까지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비로소 그 이름에 합당한 ‘자기만의 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표지 그림은 최은영 작가의 「평범한 하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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