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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pr 22. 2023

다시 쓰는 일기 23 – 2023. 4. XX

멀고 먼 망월사望月寺

도봉산 망월사를 가 보고 싶었다. 의정부에 있는 절이라지만 전철로 갈 수 있고, 또 달 월月 자가 들어간 절 이름이 좋았다. 왠지 나는 달 월 자가 들어간 절 이름이 좋다. 그래서일까, 월정사도 가 보았고 간월암에도 가 보았다. 집에서 나와 전철 3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망월사역까지 가는 데 꼭 1시간 반이 걸렸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전철 안에서 1 시간이 넘게 있어야 할 때는 복사해 온 ‘자료’를 읽었다. 복사해 온 자료라니? 나를 무슨 연구원이나 수험생으로 오해하진 말기 바란다. 예전에는 얇은 책 한 권을 가져와서 이동 중에 읽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참 쑥스러운 일로 여겨져 그만둔 지 오래다(들고 다니는 게 번거롭기도 했다). 전철이나 버스 등 이동 수단 안에서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그 긴 시간이 무료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책의 일부(대체로 약 30쪽 분량 정도)를 복사해 와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읽은 책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더 깊이 기억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최근에 읽은 것이 다카시나 슈지의 『명화를 보는 눈 : 서양 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였고, 요즘 읽고 있는 것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다. 앞의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 미술에 관한 책이다. 서양 미술에 관한 책을 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림 보는 안목은 없고 서양 미술사에 대한 지식도 시원치 않아서 불만스럽던 차인데, 이 책은 미술 작품을 보는 태도를 바꿔 주는 것 같았다. 서양 명화 하나씩을 선정하여 작가와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 해당 작품이 보여주는 색채와 명암, 구도, 기법, 작품 속에 표현되는 인물과 소도구들의 상징 등을 분석하고 추적하여 작품의 총체적 의미를 드러내 주는 방식이 너무나 정교하고 치밀해서 ‘아! 작품을 이렇게나 섬세하게 볼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했었다. 400쪽에 이르는 책을 열 몇 부분으로 나누어 복사해서 전철을 탈 때마다 들고 다니며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요즘에 가져가는 복사물이 후자인 신형철 평론가의 책이다. 이 책은 꽤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시화詩話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에 관한 책이다. 나는 시를 많이는 ‘읽었지만’ 시에 관한 이해력은 한참 낮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집에 있는 시집을 무작위로 꺼내어서 하루 3편씩 베껴 쓰는 일을 해 왔다. 신경림 시, 황동규 시, 이성복 시, 백석 시, 기형도 시 등등 아마 지금까지 베껴 쓴 시가 적어도 2,000편은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시를 잘 모르겠다. 이제 와(신형철의 책을 읽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그냥 베껴만 썼지 이해한 게 아니었다(정확히 말하면 이해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좋은 시를 많이 ‘외우는’ 게 시 이해의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끝까지 외울 수 있는 시도 별로 없다(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시험 준비로 외운 시 정도). 이전에도 유종호 평론가의 책을 읽으며 ‘시를 치밀하게 읽는 자세에 대해 느낀’ 바가 없지 않았지만 그냥 그때뿐이었다. 그러면서 ‘시는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왜 이렇게 어렵게 쓰는 거지?’하는 불만만 있었다. 기계적으로 베껴 쓰고 한두 번 읽어 보고는 다음 시로 옮겨가는 버릇이 이날까지 쌓여 왔다. 이번에 『인생의 역사』를 읽고는 새삼 ‘망치에 맞은 듯이’ 시 읽기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고 또 읽어서 ‘이렇게도 해석해 보고 저렇게도 상상해 보는’ 시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절감했다고 할까. 그래서 신형철 평론가의 시 읽는 방법과 자세를 배워보고자 『인생의 역사』에 쓰인 시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중이다.   


   

11시 40분에 망월사역에 도착했다. 네이버 길 찾기 앱에 따르면 역에서 20분 걸어가면 망월사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산에 가면서도 옷차림은 가볍게 했다. 큰길에서 망월사 표지판을 보고 화살표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가다 보니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다시 확인하고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 드문드문 식당들이 있고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정원식 카페 건물을 지나자 가파르고 좁은 길이 나왔다. 산길이었다. 나무 계단과 돌계단길이 이어졌다. 걸은 시간이 이미 30분이 넘었는데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는 데다 근방에 절 같은 건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절이 산속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 좀 더 가면 나오겠지, 하고 오르기를 계속했다. 흐린 날씨였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비 예보가 있었기에 우산은 준비해 온 터였다. 이제는 커다란 바위들이 나오고 철봉과 쇠줄이 설치돼 있었다. 경사가 가파른 데다 둥근 바위들이라 발을 디딜 자리가 마땅치 않거나,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만큼 통로가 좁아서 나로서는 거의 암벽 등반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설마 절로 가는 길이 이런 길일 리는 없을 텐데, 하고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보았다. 목적지에서 서쪽으로 벗어난 지역을 헤매고 있었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가 보려고 해도 길이 없는 숲 속이라 접근할 수가 없었다(진입금지 표시들도 세워져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은 목적지에서 서쪽으로 떨어져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쯤 되어서야 내가 무엇을 착각했는지를 알게 됐다. 망월사역에서 20분 거리라는 것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만 표시된 것이었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절까지는 점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착각한 것이다. 산길이라 측정이 되지 않는 길은 점선으로 표시한 것이다. 나는 그 점선 길 서쪽의 등산로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차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고는 이렇게 나는 것이 아닐까. 물기에 젖은 바위와 철봉은 미끄러워서 자칫 실수 한 번에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벌써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다. 위치번호를 표시한 국립공원 안내 표시가 보였다. 해발 517m였다. 공원 사무소로 전화를 했다. 길 잃고 헤매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현재의 내 위치를 ‘캡처’하여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캡처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 번 조언을 받은 끝에 겨우 전송을 했다. 그때 마침 등산객 일행 세 분이 다가오기에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어차피 포대 능선 정상까지는 올라가야 망월사 가는 길이 나온다’며 뒤를 따라오라고 했다. 포대 능선까지는 가는 방향이 같다는 것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옷은 축축했고 발은 무겁고 다리 힘은 풀려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인지라 허기는 말할 것도 없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내 모습을 딱하게 여긴 그분들이 생수 한 병과 양갱 등 먹을 것을 주었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데 이러다 큰 사고가 난다‘며 걱정을 했다.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그들 뒤를 따라가는데 포대 능선 정상은 언제나 나오는지 여전히 험하고 가파른 계단과 바위들을 쉴 새 없이 올랐다. 30여 분 지나 정상에서 그분들과 헤어져 망월사 가는 길을 찾아들었다. 망월사까지 1.6km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헤어질 때 그분들이 ’자칫 잘못하면 사패산 가는 길로 빠질 수가 있으니 표지판을 잘 확인하라‘는 당부를 명심하고 몇 걸음 갈 때마다 지도를 확인하고 표시판을 놓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살폈다. 조금 지나 등산모임 일행이 반대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일행들은 여러 명씩 그룹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을 만날 때마다 이 길이 망월사 가는 길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자기들끼리 무전기로 연락을 하기도 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었던지 어느 분은 유과 등의 먹을 것을 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사패산과 망월사 갈림길을 (무사히) 지나서 15분쯤 내려오니 망월사였다. 망월사역을 출발한 지 3시간 50분 만이었다. 나중에 안 것인데 제대로 길을 잡아들었으면 4∼50분(맙소사!)에 당도할 수 있는 길이었다. 절 경내로 들어가는 작은 문(전서체의 현판 글자가 위아래로 뒤집어져 있었는데 식별이 용이치 않아 마지막 문門자만 알 수 있었고 나머지 글자는 읽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절 경내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니 금강문인 것 같았다) 앞에 도달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부처님이 어떤 귀중한 가르침을 주려고 이리도 힘들게 돌아서 오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절 경내에 배치된 전각들이 웅장했다.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지어진 건물들의 배치가 마치 층계와 같은 구성이었다. 경내는 고요했다. 적막하기까지 했다. 법당 앞마당에서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초 하나를 사서 식구들의 안녕을 비는 문구를 적고 불을 켰다. 법당에서 아래로 내려오는데 지게를 지고 오는 분을 만났다. 아마 절에서 사용할 물품을 나르는 분인 것 같았다. 나는 그분에게 망월사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방금 전에 법당 앞에서 만난 보살님에게도 물었던 말이다. 그분이 절 아래로 보이는 산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길입니다. 그 길 하나밖에 없어요”.      


천왕문(왼쪽)

길을 잃었다. 험난한 길이 계속된다. 안개는 자욱하고 길은 미끄럽다. 앞으로 어느 만큼이나 더 가야 하는지, 얼마나 더 험한 길을 지나야 목적지에 도달할지 알 수 없다. 불안하고 공포심도 느낀다. 그런데도 그쯤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모하고 어리석다. 왜 그랬을까? 험난한 바위 길의 (이미 겪은) 위험을 우선 몸이 거부하고, 다른 길에의 기대를 부추긴 마음이 서로 합작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70년대에 유행했던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 갈래 깊은 산속 헤맸나······. 인생 또한 그런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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