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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May 29. 2023

부산 1박 2일

부산지사에서 몇 달간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간 길에 부산의 이름난 장소 몇 곳을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부산에 간 것이 수십 번이지만 한 번도 관광 목적인 적은 없었다. 큰 외삼촌이 사시던 곳이라 외삼촌댁을 가거나, 친지의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회사 일로 갔을 뿐 부산의 명소를 구경한 기억은 없다. 그러니 최백호 씨 노래에서와 같은 낭만적인 추억도 있을 리 없다. 부산을 떠올리면 오히려 씁쓸한 기억이 있을 뿐이다. 입사 초기 부산과 관련된 업무 실수로 그 뒷수습을 위해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사표를 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이후 정년이 될 때까지 30년을 일했다. 오래전 어느 개그 프로에서 개그맨 정준하 씨는 어떤 주제에 대한 첫마디가 언제나 '저는 OO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라는 말로 시작해서 인기를 끌었었는데 내게 부산이란 그런 기억으로 남은 곳이다.      



광안리, 밀락더마켓

광안대로(교)는 수영구 남천동에서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근을 잇는 총연장 7.42km의 국내 최대의 해상 복층 교량이다. 이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안리 바닷가 민락수변로에 키친보리에가 운영하는 ‘밀락더마켓’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작년 7월에 개장했다고 한다. 지상 2층의 바다를 향한 건물이다. 건물 전면은 유리로 되어 있다. 1, 2층을 잇는 스탠드형 계단(오션뷰 스탠드)에서 음식을 먹으며 바다 구경을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는 해산물, 피자, 한식, 맥주 집 등 다양한 맛집과 아트숍, 패션숍, 셀프 사진관 등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가게들이 있다.      



감천동 문화마을

‘부산의 산토리니’ 등의 이름으로 부산 최고의 명소로 소문난 곳이라 새삼 언급하는 게 식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레고 마을’을 연상시키는, ‘거미줄처럼 얽힌’ 사통팔달의 골목길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천마을은 문체부의 지원문화사업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2009∼2010년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마을 경관을 재정비하면서 문화 마을로 거듭난 감천동은 원래 50∼60 집이 모여 살던 한적한 산촌이었는데, 한국전쟁 발발 후 피난민이 몰려오고, 1957년 태극교도 1000여 세대가 옮겨오면서 조성되었다. 태극교는 ‘보수동 일대에 집단 천막촌을 형성했던 민족 종교의 일종’이라고 한다. 당시 공동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공동 우물과 산제당, 재래식 화장실이 남아 있다. 평일 낮인데도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만큼 관광객들로 넘친다. 길가에는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고 여기저기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감천마을에서 바라보는 용두산, 부산항, 감천항 등 부산의 전경이 눈호강을 시켜준다. 이 마을의 참모습을 느끼기 위해서는 이런 조망과 함께 집과 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보아야 할 것 같다.       



해동용궁사

이 절 또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대표적인 부산의 명소이다. 안내문에서는 이 절을 ‘짙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水上法堂으로, 낙산사 · 보리암과 함께 한국 3대 관음성지의 한 곳’이라고 적고 있다. 한국 3대 관음성지의 하나로는 강화 보문사를 꼽는 것 같은데 어느 이야기가 맞는지,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도 여러 말이 있는 것 같다. 절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의하면 용궁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철종 5년(1854)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되면서 용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안내문에는 이 절이 본래 고려 우왕 2년(1376) 나옹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쓰여 있으니 이 또한 혼란스럽다. 어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절은 1970년대에 지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어졌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안내문에 적힌 대원군이 썼다는 용궁사 편액과 해강 김규진이 썼다는 관음전 주련 글씨는 또 무엇인지, 아무튼 많이 헷갈리는 부분이다. 절의 역사가 어떠하든 나 같은 중생에게는 다 같은 부처님이 계신 곳이니 공손한 마음으로 합장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될 일이고 더불어 이 절에서 바라보는 수려한 풍광에 감탄하면 족할 일이다.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

해운대블루라인파크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 2 종류가 있다. 스카이캡슐은 지상 10m 상공의 공중 레일이다. 이번에 나는 해변열차만 타 보았다. 해변열차는 미포정거장에서 송정정거장까지 총 4.5km를 달린다. 25분(편도)이 걸린다. 달맞이터널, 다릿돌전망대, 구덕포 등 정겨운 이름의 정거장을 지나면서 해안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광열차이다. 자유 이용권을 이용하면 모든 정거장에서 1회에 한하여 재탑승이 가능하다. 보행로가 마련되어 있어 걸어서 왕래할 수도 있다.      



F1963

F1963은 부산시 망미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나는 윤광준의 책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 읽고 이곳을 알았다. 이곳은 원래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고려제강 수영공장(1963∼2008)이었는데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탄생했다고 한다. F는 Factory, 1963은 수영공장이 완공된 해를 의미한다. 이곳에는 YES24 중고서점, 국제갤러리 부산점, 공연장(석천홀), 카페, 복순도가(레스토랑, 맥주홀), 예술서적 도서관, 전시장 등이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은 YES24중고서점이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평일 오후 시간이어선지 매장 안은 한산한 편이다. 이래 가지고 이 넓은 매장이 수지를 맞출 수 있는지, 주제넘은 생각을 해보았다. 매장 곳곳에 과거 책 만드는 데 사용하던 타공기打孔機, 제판용 카메라, 엮음기 등 오래된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술 서적 도서관 옆에 아름다운 수조정원水槽庭園이 있다.      


아들이 추천해 준 몇 군데 맛집이 있었지만 이 글이 맛집 소개 글은 아닌지라 생략한다. 다만 기장 해녀촌의 포장마차 식 해산물 식당이 기억에 남는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식당들이 저마다 맛집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어 어느 집을 택해서 들어가야 할지 난감했다. 가게 앞에서 해산물을 손질하는 인상 좋은 할머니의 집을 택했다. 다른 집들처럼 ‘과한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 점도 호감을 주었다.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 나지만 한 점 남김없이 먹을 만큼 싱싱하고 고소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인 셈 치고는 꽤 여러 곳을 둘러본 셈이다. 주로 택시를 이용하거나 버스와 전철을 1시간 넘게 타는 등 이동에 따른 대중교통이 수월치는 않았다는 것이 흠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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