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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Jul 10. 2023

책이 뭐길래···

 작은 딸이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사 왔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책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는, 일본의 저명한 인문학자 우치다 다츠루(內田 樹, 이 분 이름을 우치다 다쓰루 또는 우치다 다츠루라고 표기하는데 나는 우치다 다츠루라고 했다)가 쓴 『街場の讀書論』이란 책이다(우리나라에서는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이 책에 수록된  「책벌레의 슬픔」(제대로 번역한 건지 모르겠다)이라는 글에 나오는 저자의 ‘독서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남다르다. 저자는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는데, 지독한 근시인 탓에 책을 얼굴에 바짝 대고 읽다 보니 음식을 나르는 젓가락과 책이 부딪치게 되므로 잠시 책을 내려놓는 사이 음식물을 입에 넣고 재빨리 책을 끌어당긴다. 그 사이의 1초가 저자에게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낭비의 시간이다.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는다. 화장실에 비치해 둔 책이 이미 다 읽은 책이라는 걸 알게 되면 서둘러 책꽂이로 가서 화장실에서 읽어야 할 책을 찾는다(이어지는 보다 흥미 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생략한다). 당연히 전철 안에서는 반드시 책을 읽는다. 도중에 다 읽어버렸을 때의 ‘절망’을 생각해서 잊지 않고 ‘여분의 책 한 권’을 지참한다. 역에 도착하고 나서 가방 안에 책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패닉 상태’가 되어 열차 도착 시간이 촉박해도 무조건 근처의 책방으로 달려가 전철에서 읽을 책(저자는 ‘전차본’이라고 표현한다)을 구입한다. 그런데 저자는 책을 읽을 때 몰입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원고를 쓴다. 책을 읽을 때 자주 책 읽는 걸 중지하고 허공을 응시하는데 그 응시하는 동안이 책 속의 어느 한 대목이 촉발되어 뇌 속에서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텍스트 파일’에 기록되는 순간이다. 이런 바쁜 삶을 사니 수없이 많은 책을 읽고, 또 수없이 많은 책을 쓸 수밖에. 저자는 이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삶을 ‘서글프다’고 했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지난주 신문에서 읽은 글항아리 편집장 이은혜 씨의 칼럼도 책 이야기다(출판사 편집장이니 책 이야기가 하등 이상할 게 없지만). ‘과거를 직시하는 책 정리법’이라는 제목대로 책장 일부를 2021년, 2022년, 2023년에 읽은 책들이 한 줄씩 차지하도록 책 정리법(그분은 이런 배열을 ‘과거를 직시하는 책 정리법’이라고 했다)을 바꾼 사연을 적은 글인데, 그분은 ‘1,000쪽이 넘는 과학, 철학, 역사책을 죽을 때까지 읽을 일은 없을 거라는 예감에서 이렇게 책 정리 방식을 ’좀 더 과거 지향적이고 주관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생이 30년이라면 30칸 정도의 책꽂이를 간신히 채울 것이라면서 작은 방 벽면 하나 차지하는 책장밖에 안 되니 ‘초라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독서 계획도 없이 책만큼은 매일 사들인다는 그분은 ‘죽을 때까지 읽을 일은 아마 없을 거’라는 예감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매일 책을 사들일까? (참고로 나는 이 분의 칼럼에 나오는 책들을 가끔 구해 읽는데, 마을 도서관에 가보면 열에 아홉은 대출 중이다). 책에 대한 ‘집착’ 사례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매월당 김시습은 산천경개를 구경 갈 때도 수레에 책을 싣고 다녔다고 하며, 조선 후기 이덕무나 연암, 다산 등의 책 읽기는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각각 1,000쪽이 넘는 철학책(『니체 극장』과 『하이데거 극장』)을 쓴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에 대한 기사도 읽었다(그 방대한 책을 쓰자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는가!). 철학 이론을 소개하는 어떤 유튜브 동영상을 가끔 보는데 나이가 꽤 젊어 보이는 진행자의 그 박학한 철학 지식에 놀랄 때가 많다. 그리스 고전 철학을 시작으로 동, 서양 철학과 라캉이니 데리다니 벤야민이니 푸코니 하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현대 철학자에 이르기까지 그 사상과 개념을 어찌 그리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지 도대체 이 분은 언제 이 많은 책을 다 읽었는가 하는 그저 ‘불가사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온통 책 안 읽는 풍조에 대한 걱정이 넘치는데 어찌 이리 박식하고 책에 ‘들린’ 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책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아내가 내게 가끔 묻는 말이다. 집에 있는 날은 대부분 책 펴 놓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책이 뭐 그리 재미있겠소. 달리 할 일이 없으니 그렇지” 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TV를 잘 보지 않고 스마트폰도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외출하지 않는 날은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면 오로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무료한 시간을 그나마 책으로 때우는 것이다. 무료하다고 억지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도무지 흥미가 없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 재미있다. 이름난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감추어진 비밀을 이해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니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다는 말이 반은 맞다. 그런데 책 읽는 시간이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눈은 침침해서 글자는 잘 들어오지 않고, 한 대목을 두세 번 읽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의 연속일 때는 (물론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도대체 내가 왜 (이 나이에) 방에 틀어박혀 이런 어려운 책을 붙들고, 그것도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일과 씨름을 해야 하는지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친구들처럼 골프도 치러 다니고(그만둔 지가 오래여서 지금 다시 친다는 게 무리인 데다 또 그게 돈이 많이 들면)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당구 한 판 치고, 끝나면 막걸리 한잔씩 한 다음에 저녁 느지막하게 집에 오면 시간도 잘 가고 아내도 좋을 텐데 왜 나는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또 책 검색을 하다가  『이병주 평전』(이 책도 1,000쪽이나 된다)이 작년에 출간된 것을 알았다. ‘아, 이 책을 읽어 봐야 하는데’ 하는 조급한 마음에 검색해 보니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에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 며칠 동안 이 책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표지는 부산시 망미동의 복합문화공간 F1963 내부의 YES24 중고서점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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