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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Aug 19. 2023

돈 복

아무리 재미로 한다지만···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문화교실 서예반에서 가끔 주식 투자 이야기를 듣는다.  글씨 쓰는 중간에 커피 한 잔 들고 바깥 복도에 나와 보면 몇몇 사람이 모여서 ‘어제는 얼마를 벌었네, 타이밍을 놓쳐 얼마를 벌 기회를 날렸네’, 하는 이야기가 오간다. 특히 두세 분이 열성적인데, 그중 한 분은 10년쯤 전에 한 주당 8만 원 가는 주식 100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 지금 한 주당 80만 원 정도에서 오락가락한다고 한다. 아마 이 분은 우량주를 사서 장기간 투자하는 정석 투자자인 것 같다. 또 한 분은 2차 전지니 반도체니 ‘밧데리 아저씨’니 하는 제법 소상한 설명과 함께 요즘 주식시장은 잘 만 하면 몇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하며 이런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주식 투자를 권유한다(그런데 정작 자신의 투자 결과가 어떤지는 말이 없다). 반면에 또 한 분은 최근에 어떤 주식에 아내 몰래 비자금으로 모아 둔 돈을 ‘몰빵’ 투자했다가 거의 반토막이 났다며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간 쪽박 차기 십상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분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옛날 생각이 난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 코스닥 시장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회사원들 사이에 주식 투자가 한창 붐이었다. 휴게실에 가면 주식 아니면 골프이야기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 투자 같은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그럴 여력도 없었지만) 심지어 복권 같은 걸 사 본 적도 없다(지금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런 행운(요행)이 나 같은 사람에게 올 리가 없다는 확고부동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였는데 주위 동료들이 주식으로 짭짤한 부대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말을 계속 듣게 되면서 나도 한번 주식을 해볼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왕 주식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는 ‘학구열’이 발동하여 주식 투자에 관한 책 몇 권을 사서 공부했다. 각종 지표와 용어, 차트 보는 법 등 기초지식을 공부하고, 또 주식 투자하면서 명심해야 할 격언 등을 숙지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투자 경력이 꽤 있는 동료들의 조언을 받아서 몇 개의 ‘유망 종목’을 매수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이니 책이나 증권사 그리고 주변 지인들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정보를 토대로 종목을 발굴하고 매매일기를 기록했다. (그때는 증권사 객장에서, 또는 전화로 주식 매매를 했다). 종목별 차트를 그려서 주가 흐름을 파악하고 소위 기술적 지표를 분석하여 주가를 예측하는 등 정석 투자를 한답시고 머릿속에는 온통 주식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투자를 시작한 지 한 2년쯤 지났을까. 결과는 투자금의 반쯤을 까먹고 다시는 주식 시장을 얼쩡거리지 않겠다는 ‘비장하고 사무친 각오’로 끝났다. 수도 없이 많은 종목을 사고팔았는데 지금 기억나는 종목은 ‘한글과 컴퓨터’ 딱 한 종목이다. 주식을 접고 내다 버린 노트와 책이 아마 한 상자는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아내에게 한 건 물론이고 내게는 그런 ‘돈 복’이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하기도 했다. ‘주식을 하는 건 가시밭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 당시 머릿속에 들어 있던 수많은 주식 격언 중에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말이다. 이 가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저 가시에 걸리는 것을 비유해서 한 것이다. 


 그 뒤 몇 년 지나 동남아의 한 나라에서 해외 주재 근무를 했을 때다. 나보다 1년 늦게 부임한 동료 직원이 있었다. IMF가 터진 바로 그해 늦가을이었다. 그 직원은 해외 발령이 나면서 살던 집 전세 준 돈을 투자할 곳을 찾다가 어느 증권사 직원의 권유로 모 운수회사 주식을 사놓게 되었다. 당시 IMF 직후라 주식 시세가 바닥으로 추락했을 시기였다. 그때까지 주식 투자라곤 해본 적이 없고 전혀 관심도 없던 그 직원은 증권회사 직원 말이 그럴듯하게 들려서 약속을 한 것인데, 그런 무모한 투자를 왜 하느냐며 아내의 반대가 완강했다. 증권회사 직원과의 약속도 고려해서 전세금의 3분의 1만 투자하기로 아내를 겨우 설득했다. 1년쯤 지났다. 사나흘에 한 번 받아 보는 국내신문 증권 시세를 본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 주식이 2.5배가 넘게 올라 있었다. 그날로 증권 회사에 연락하여 모든 물량을 처분했다. 훗날 이야기를 들으니 그 일로 아내와 크게 다투었다고 했다. 투자하지 못한 나머지 3분의 2를 두고 벌어진 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새삼 주식 투자(투자라는 말이 좀 거창한데)를 시작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주식 투자라면 (식구들이 합동으로) 공모주 청약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공모주 배정이라고 해야 기껏 한두 주가 고작이고 수익이라야 많아야 기 만원이었다. 감질나면서도 뭔가 미진한 기분이었다. 주식 투자에 나서기로 ‘용기’를 낸 결정적 계기는 서예교실에서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정보와 유튜브 주식방송이다. 아마도 예전의 아스라한 경험이 충동질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드머니’는 지난달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준 용돈 일부인데 그 금액이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일확천금’에 혹해서 새삼 주식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유튜브 주식방송을 들어본 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 자극적인 홍보. ‘이 주식 몰빵해라’ ‘100만 원으로 1억 만들기 프로젝트’ ‘지구 종말이 와도 사라’ 등등. 이 나이 되도록 애당초 요행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는 나니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는다. 그런 엄청난 행운이 나 같은 사람, 더구나 이 나이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무 종목이나 살 수는 없으니 ‘힌트’는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침 9시 땡 하면서부터 핸드폰에 집중하다 보니 혹여 아내가 오해할까 일찌감치 양해는 구해놓았다. 부스러기 용돈으로 재미삼아 해보겠다는데 아낸들 반대할 일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 투자한 지 한 달이 되었는데 투자금의 8% 정도 손실을 기록 중이다.


 처음 시작하면서 몇 가지 투자 원칙을 세워 놓았다. 우선 내가 보기에 그래도 좀 신뢰가 가는 유튜브 전문가 1∼2명의 추천 종목 위주로 매수한다. 5% 이상 손실이면 손절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가급적 기다린다. 1차 목표가에 도달하면 반은 팔고 나머지는 봐 가면서 적당한 타이밍에 판다. 투자금의 3분의 1 정도는 현금으로 보유한다(여차하면 매수해야 하니까). (아마 여기까지 읽은 분은 ‘아니 얼마나 되는 돈으로 투자한다고 저런 호들갑이야, 모기 보고 칼 빼는 거 아니야?’ 하고 혀를 차는 분도 있을 것이다) 계산상으로야 그럴듯한데 실제는 어떤가. 조급한 마음에  손 놓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투자자가 있겠는가. 두 종목이 묶여서 지지부진하다고 남은 현금을 놔두고 있겠는가. 곧 만회할 것 같은 매력적인 종목이 유혹하는데 느긋하게 참고 기다리겠는가. 그러다 보면 투자한 모든 종목이 묶여버린다(드물지만 운 좋게도 한 종목이 올라가서 숨통이 트이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손절매하기도 한다). 열흘쯤 해 보고는 전략을 바꾼다. 추천종목 한두 개는 며칠 기다리고(3일에서 10일은 기다리라는 게 그들의 조언이다) 나머지 금액으로는 ‘단타’로 대응한다. 흔히 말하는 단타라면 뜨는 종목을 저점매수(이 말처럼 난감한 말이란!) 해서(때로는 추격 매수해서) 일정 퍼센트 이상 올라가면 매도하는 경우인데(그 매도 시점 잡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종목은 대체로 투기 종목이어서 나 같은 사람이 넘볼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시도한 전략이 ‘낚시 전략’이다. 나름대로 주가 흐름을 보고 어느 가격쯤에다 매수를 걸어놓고 기다린다. 장 끝날 때까지 걸리지 않는 날이 많은데 어쩌다 걸렸더라도 딱 5% 수익 내면 무조건 매도한다. 이런 전력(?)으로 몇 번 재미를 보긴 했지만 실패 사례(미끼에 물리지 않는 경우, 혹은 5%까지 오르지 않아서 관망하다가 하락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8% 손실이란 그나마 이런 보수적인 매매 방식 덕택이 아닐까 한다. 처음에는 전날 추천받은 종목을 다음날 매수하는 방식이었는데 초장부터 오르는 종목을 뒤따라가는 경우가 많아 실패 확률이 높았다. 조금 요령이 생겨서 추천 종목 중 내리는 종목을 ‘선취매’ 해서 기다리는 전략도 써보았다. 리스크는 적었지만 성공 사례도 미미했다. 유명 유튜버가 진짜 알짜배기 주식을 공짜로 추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자선 사업하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공개 추천 종목은 수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도 없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부족한 나 같은 일반 투자자로서는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투자는 내 책임으로 하는 것이니 손실금을 그 사람들이 책임져 줄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작’은 무엇하자는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더 난감한 일은 주식에 정신이 팔리고 난 뒤부터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오전 내내 주식 창을 들여다보아야 하니 책을 읽을 수가 있나 글을 쓸 수가 있나. 낮에는 시세를 봐야 하고 밤에는 주식 방송을 듣고 다음날 주목할 종목을 고르고(투자할 잔고도 없으면서)···. 서예반의 어떤 분이 충고한다. ‘그러니까 우량 종목 사서 묻어 두세요. 그게 버는 거예요’ 그럼 나는 (속으로) ‘투자금이 몇 푼이나 된다고, 그걸 몇 년씩 기다려요, 이 나이에?’한다. 


그래도 당분간 나는 이 일에 몰두해 보려고 한다. 혹 아내의 걱정처럼 (사전 상의도 없이) 무리하게 투자금액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횡재를 가져다줄 그런 돈 복이 없다는 건 애시당초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 그럼 주식은 왜 하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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