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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효당 Oct 21. 2023

다시 쓰는 일기 26 - 2023.10.XX

영인문학관 전시를 보고

영인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인들의 일상 탐색’ 전시회를 보러 갔다. 지난 5월에 부채 전시회를 보았으니 영인문학관은 올해 들어 두 번째다. 이번에는 아내와 동행했다. 평창동은 예전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시회도 본 적이 있어 어느 정도 익숙한 곳이었는데도 길을 찾느라 허둥지둥했다. 당연히 아내의 핀잔이 있었다. 사실 영인문학관 가는 길은 아주 쉽다.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평창동 롯데아파트 정거장에서 내려서 큰길을 건너 언덕길을 올라 10분 남짓 걸어가면 된다. 오늘 보니 큰길에 영인문학관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네이버 길 찾기 앱을 보며 큰길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헤맸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문인들의 애장품과 서화자료, 육필 원고 등 영인문학관이 문인들로부터 기증받아 모은, '작가의 혼이 담긴 물건’ 90여 점을 전시하는 것이다. 각각의 전시품에는 영인문학관 관장인 강인숙 선생이 정성스럽게 써놓은 메모가 있어 작가와의 인연이나  전시품과의 사연을 짐작할 수 있다. 넓은 전시실에 들어서면 우선 맞은편 벽 앞에 앉아 있는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등신대 모습이 눈길을 끈다. 흡사 실제로 선생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 생생하다. 입구 맞은편의 병풍도 눈길을 끈다. 연재소설의 삽화를 모아서 만든 것이다. 박용구 선생의 「사막서 온 공주들」이라는 소설의 삽화인데 김세종 화백의 그림이다. 김세종 화백이라면 60∼70년대 신문소설에 많은 삽화를 그린 분으로 유명하다. 특히 역사소설 삽화가 기억에 남아 있는데 아마 그 당시 신문소설 삽화가로는 독보적인 분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삽화를 모아서 병풍으로 만들다니! 병풍으로 만든 분은 수필가 박현서 선생이다. 병풍을 기증한 분은 동생인 박경희 씨인데 지난 9월에 타계했다고 한다. 입구 가까운 곳에서부터 전시실 벽을 따라 진열된 전시품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소설가 김훈이 사용하던 몽당연필이 있고 장난감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연필로 꾹꾹 눌러서 원고를 쓴다’는 작가이니 몽당연필은 그의 분신 같은 것일 테고, 『자전거 여행』을 쓴 자전거 마니아이니 그 소품 또한 자연스럽다. 김영태 시인의 애장품 피에로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젖는다. 나는 김영태 시인의 그림과 글을 좋아해서 여러 권의 소묘집과 산문집을 가지고 있다. 박경리 작가의 재떨이와 과자 접시도 흥미롭다. 예전 어느 잡지에 실린 그분의 사진이 생각난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다. 아마 담배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강석경 작가의 기념품도 물담배다. 김화영 교수와 유재용 작가의 워드프로세서 르모도 있다. 오래전 것이다. 조정래 선생의 아기 불상이 있고 허동화 선생의 나무로 만든 새도 눈길을 끌었다. 팬클럽 회장으로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을 수필가 전숙희 선생이 모은 작은 종들, 서영은 작가의 낙타 조각 소품도 보인다. 서영은 선생은 낙타와 관련된 소설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낙타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무용가 국수호 선생의 무대 의상도 특이한 전시품이다. 박완서 선생의 해산바가지 앞에서 잠시 멈춘다. 장녀 호원숙 씨를 낳을 때의 물건이라 한다. 전시회를 소개하는 어느 신문에  이 해산 바가지에 대한 사연이 적혀 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던 시절 작가의 시어머니는 첫 아이로 딸을 낳은 며느리를 위해 해산 바가지를 마련했고 이 바가지로 쌀을 씻고 미역을 불려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이를 소재로 한 소설도 썼던 것 같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남조 시인이 기중한 화려한 색깔의 초도 인상적이다.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은혼식 사진을 보고 옆 전시실로 갔다.


김영태 시인의 피에로, 김훈 작가의 몽당연필 등
김남조 시인의 초, 박완서 작가의 해산바가지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상 <오감도>
김영태 시인이 마종기 시인에게 보낸 생일카드, 황순원 육필 원고

그곳에는 오래전 잡지와 1920∼30년대 신문 연재소설 스크랩들, 그리고 희귀한 시집과 소설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님의 침묵』,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보이고 김동인의 『감자』,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김동리의 『황토기』, 황순원의 『목넘이 마을의 개』 등 우리가 잘 아는 작품들이다. 1930∼1950년대 문인들의 육필 원고가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이상의 「오감도」,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황순원의 소설 『움직이는 성』 초고 노트, 대학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쓴 이균영 작가의 초고 원고, 박범신, 조정래 작가의 메모 등을 보면서 창작의 고통과 그 과정을 새삼 느꼈다. 이밖에도 문인들이 주고받은 편지와 생일 축하 카드, 엽서, 조병화 시인의 이어령 선생 결혼 축시와 정비석 선생이 최일남 작가 결혼식에 보낸 축의 봉투, 호적등본(가람 이병기), 기념우표(김동리, 박경리, 만화가 김성환), 김광섭 시인의 1950년대 사진첩, 주민등록증 같은 진귀한 자료들도 볼 수 있다. 그냥 나오기가 아쉬워 옆 전시실에 들어가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특히 강인숙 관장이 쓴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김영태 선생은 남이 잘 안 보는 물건들을 본다. 그가 남긴 물건들은 개성이 강하다. 피에로도 있고 작고 예쁜 커피잔과 1인용 커피 기계. 늘 1인용만 가지고 산 그 고독이 보인다···’는 시인 김영태의 소품에 붙인 글이고, ‘···낙타처럼 초연하고 낙타처럼 근사한 실루엣을 가진 작가. 그녀가 눈이 아파서 글을 못 쓴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서영은 선생에 대한 글이며, ‘···김화영 씨는 내가 고2 때 본 남편의 제자이다. 반세기가 넘었는데 우리는 그때 르모로 이어져 있었네요.’는 김화영 교수의 워드프로세서에 대해서 쓴 글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글들에 오롯이 담겨 있다. 지난번 블로그에서도 적었지만 영인문학관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지은 것이다. 현판의 글씨는 김상옥 시인이 쓴 것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 전시실을 나와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한 장 찍고 문학관을 나왔다. 좋은 동네에서 좋은 구경을 하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내의 기분도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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