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전업주부가 되다
16.03.2026
날씨: 개나리가 만개를 했다가 깜짝 놀랄 만큼 꽃샘추위가 기세 등등.
상태: 저녁을 간단하게 해도 되기에 마음이 가벼운 날.
우선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게 있다. 이건 '일기(Diary)'가 아니다. 48살 먹은 아저씨가 밤마다 조용히 앉아서 "오늘 참 즐거웠다" 따위의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건 나중에 내 아이들이 커서 "아빠, 그때 네덜란드에서 도대체 뭐 하고 살았어?"라고 물어볼 때,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서 미리 써두는 '생존 기록(Journal)'이다.
오늘 부엌에서 마늘을 까다가 문득 깨달았다. 46살까지 한국에서 지방직 공무원으로 나름 '나랏일'을 하던 내가, 지금은 네덜란드 구석진 소도시 아른헴(Arnhem)에서 '마늘'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아른헴에 온 이유는 단순하다.
와이프는 '외근(공부)'을 하러 왔고, 나는 '내근(집안일)'을 발령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집의 전업 주부, 이름하여 화란댁'이다.(네덜란드를 한자로 화란이라고 한다는데, 아빠인 나에게 '댁'이라니. 하지만 내 처지를 이보다 완벽하게 설명할 단어는 없다.)
사람들은 네덜란드 하면 암스테르담이나 헤이그를 떠올리지만, 내가 사는 곳은 잘 알지 못하는 '아른헴'이다. 왜냐면 국제학교 학비가 싸기 때문이다. 애가 둘이다 보니 교육비가 싼 곳을 찾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도 아른헴에 살아서 좋은 이유가 있다. 아른헴은 독일에서 아주 가까운 도시다. 얼마나 가깝냐고? 가끔은 장 보러 국경을 넘는다. 한국으로 치면 저녁거리 사러 옆 동네 가듯 독일 마트를 가는 셈인데, 이게 말만 들으면 멋있지 직접 가보면 그냥 '싼 물건'을 찾기 위한 48세 가장의 처절한 질주다.
여기 온 지 벌써 19개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고작 4개월 남짓 남았다. 그동안 '화란댁'으로 살면서 겪은 굴욕과 깨달음, 그리고 15개국을 돌며 깎아 먹은 내 무릎 연골의 기록을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볼 생각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일기가 아니다. 혹시 아나? 나중에 내가 유명해져서 이 기록이 박물관에 전시될지. (그때를 대비해 미리 사인 연습이라도 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