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다툼이 반복되어 지친 내담자분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합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사과를 받기는 하는데,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고 말하고,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사과로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상대방의 사과가 부족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로 상대방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덜떨어진 사람인 것일까요?
잘잘못의 함정 : 누가 틀렸는가에 집중할 때
우리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누가 더 잘못했을까?'
이 질문들은 겉보기엔 합리적이지만, 사실은 방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잘잘못의 구도'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할을 나누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시점에서 관계는 전쟁터가 됩니다. 왜냐면 '가해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가해자'가 되어야 할 때,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면 됩니다.그리고 우리는 이를 위해 상대방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한 여성분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했지요. 이때 여성분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방을 대신 들어달라는 부탁을 하였고, 상대방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요. 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상대방이 들고 있어야 할 가방이 없는 것이에요.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상대방이 미처 여성의 가방을 챙기지 못한 것이지요.
위와 같은 상황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객관적으로 봐도 남자가 잘못한 것이 맞나요? 그래서 남자한테 '왜 내 가방을 챙기지 않았느냐'라고 묻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위 사례는 실제 상담 사례를 변형한 것이에요. 이때 여자는 남자에게 '왜 그렇게 칠칠치 못하게 구느냐?'라고 말했고, 남자는 여자에게 '그렇게 중요한 거면 나한테 맡기지 말고 네가 챙겼어야지.'라고 응수했습니다. 다툼이 생긴 것이지요.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가방을 자기가 들어주기로 한 이상,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고, 여자 역시 남자만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방을 수시로 확인했어야 하지요. 하지만 잘잘못 관점에서 내가 '가해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결국 상대방을 칠칠맞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내가 소중한 물건을 남자에게 맡겨버린 무책임한 여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빨랐을 거예요. 그렇게 둘은 싸우게 되었고, 결국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싸움이 '가방을 잃어버린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나요?
무의미한 다툼을 끝내는 방법 : 마음 헤아리기
우리는 잘잘못의 관점에 갇혀 상대방을 비난하는 대신, 잘잘못의 관점을 벗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마음 헤아리기'에서 출발하지요. '마음 헤아리기'는 단순히 '공감하자'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요. '공감'이 감정의 수용이라면, '마음 헤아리기'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마음 헤아리기'란, 상대방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물어봐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 헤아리기' 관점에서는 '왜 그랬어?'대신 '어땠어?'라고 묻습니다. '왜'는 비난의 질문이지만, '어땠어'는 이해의 질문이지요. 이런 사소한 차이로 대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왜 그랬어?'는 방어를 부르고, '어땠어?'는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위 예시와 같은 상황에서도 '왜 가방을 챙기지 못한 거냐?'는 지난 대신, '지금 어때, 너도 당황스럽지?'와 같은 마음 헤아리기의 언어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서로는 비난하느라 싸우는 대신, 가방을 찾기 위한 건설적인 토의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마음 헤아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상대방의 감정을 '해석'하는 대신,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곧 '얼마나 가까워지려 하는가?'라는 의미기도 하거든요. 결국, 사랑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얼마나 이해하려 했는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마음 헤아리기의 끝에는 '비난하지 않는 시선'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판단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었구나'라는 인정이에요. 그리고 이 관점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렇게 반응했을 뿐입니다.
이 시선으로 보면 싸움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가 부딪힌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쪽의 말이 날카로웠던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쪽이 방어적으로 굴었던 것은 그저 상처받기 싫어서였을 뿐이죠. 그리고 이걸 이해하고 나면 '왜 그랬어?'라거나 '미안해.'같은 말 대신 먼저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이해는 변화를 만듭니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아도 문제는 개선될 수 있습니다. 마음 헤아리기 관점에서는 누군가가 죄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상황이 그렇게 흘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면 '잘못'은 '성장할 여지'가 됩니다. 바로 이 시점이, 여러분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멈출 수 있는 시점이 됩니다. 그리고 대화는 다시 이해와 배려의 말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론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면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거야."
잘잘못 관점에서 이 대사를 바라보면 단지 '사과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헤아리기 관점에서 이 대사를 바라보면, 우리 둘 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뿐이고, 단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그리고 이때에 비로소 이해와 공감의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진짜 사랑은 "누가 잘못했나"보다 "어떻게 다시 마음을 이을까?"를 고민하는 관계입니다. "왜 그랬어?"라는 말 대신 "그랬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여러분의 사랑은 '상징적 연애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