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있었던 일이다.
30살의 남자가 직장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왔다. 기본적인 피검사, 엑스레이, 복부 초음파 검사등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내시경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오셨다. 나는 수면약을 투여하고 위내시경 검사를 시작했다.
내시경으로 위에 진입 할 때부터 '30살 나이치곤 위염이 심하시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가 전체적으로 빨갛게 부어있으며 염증이 심해 위액도 잘 지워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검사를 진행하던 중, 나는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내시경 화면을 정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의사가 보더라도 암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상당히 진행되어 보이는 진행성 위암 (Advanced gastric cancer, AGC)이 나타난 것이다.
위암은 점막하층까지 국한되어 있는 조기위암(Early gastric cancer, EGC) 과 근육까지 침범한 진행성 위암으로 나눌 수 있다. 조기위암은 내시경적으로 절제가 가능한 경우가 많고, 5년 생존율 또한 95%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진행성 위암은 림프절 전이 가능성도 높으며 수술적 절제가 필요한 만큼 생존율 또한 감소하게 된다.
병변은 전형적인 위암의 모양과 함께 상당히 진행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크기는 2-3cm 가량으로 출혈도 동반하고 있었다. 위암을 확진하기 위해서 조직검사를 시행하고 검사를 종료하였다. 30살인 환자에게 내시경 결과가 위암인 것 같다는 설명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며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환자를 진료실로 들어오시도록했다.
나: 'OO님,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확인되었습니다..... 확진을 위해서 조직검사를 시행하긴 했습니다만 내시경으로 보았을땐 거의 위암이 확실 한 것 같습니다....'
환자: '네??? 위암이요??'
환자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며 나에게 되물었다.
환자: '위암이 확실한가요? 저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는데요? 이번 내시경 검사도 그냥 직장에서 해주는 검진으로 받은거구요'
나: '모양으로 봤을때는 위암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빨리 큰 병원에 내원하셔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하겠습니다.'
환자: '위암이 확실히 맞는 거에요? 진짜 위암인건가요?'
환자는 아직도 나의 말이 믿기질 않는 다는 듯 수차례 되물었다.
나: '네... 모양은 위암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서 대학병원 진료 예약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조직검사 결과는 2주 후에 나오니 그때 저희 병원 한 번 더 방문하시면 됩니다. 최대한 빨리 병원 진료를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환자: '네...알겠습니다.'
그렇게 착찹한 마음으로 환자를 보낸 후 환자의 다른 검사 결과를 확인했는데... 간 MRI 에서 간 전이가 의심되는 병변도 확인되었다. 아마 위암이 간으로 전이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 하루빨리 조직검사 확인 및 항암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였다. 우선 환자를 대학병원에 가시도록 안내했으니 바로 진료를 보셨으리라 믿고 잘 치료받기를 기도했다.
위에서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위암으로 나왔다. 2주가 지나서 환자가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내원했다.
나: '조직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위암으로 나왔습니다. 대학병원 진료는 예약하셨나요?'
환자: '아뇨... 조직검사까지 확인하고 대학병원 가려고 아직 예약 안했어요.'
나: '네? 아직 진료 보러 가지 않으셨다구요? 조직검사와 관계없이 하루 빨리 대학병원 진료를 보러 가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왜 안가셧어요...간에 전이도 의심되는 소견이여서 빨리 진료보고 치료 시작하셔야해요!'
환자: '아... 위암이라는게 믿기질 않아서 조직검사까지 확인하고 가려고 했어요.. 네 알겠습니다...'
환자의 입장도 너무나 이해가 갔다. 암이라고 하면, 특히나 위암 같은 경우 젊은 나이에 많이 생기는 암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위암이라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환자는 아무런 증상도 없는 상태였으니까. 그저 검진하러와서 본이니 진행성 위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라도 쉽게 수용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진료하는 내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진료를 보고 치료를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조직검사를 기다리고, 그걸 확인하고 대학병원에 가겠다는 환자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우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은 젊은 나이 일수록 진행이 빨라 치료도 빠르게 시작해야하는데 하루하루가 늦어지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처음 내시경 결과를 설명할 때 더 강력하게, 무섭게 설명 했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환자에게 조직검사 결과를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대학병원에 꼭 가시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진료를 끝마쳤다.
벌써 1년이 지난 지금,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마치셨을 그 환자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위암이라고 진단했던 당시 환자의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어하는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나쁜 소식을 단기간에 받아들이긴 참 어려운 것 같다.
환자분이 무사히 치료를 잘 마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고 계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