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채 리더십

상황적 리더십

by 선배언니

부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리더십이다. 가장 많이 받았던 연수는? 리더십 연수이다. 직급이 올라 갈수록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나에 대한 리더십 평가이다. 나의 승진에 발목을 잡았던 항목은? 역시 리더십 항목이었다.


리더십 이슈는 언제, 어디서나 핵심 화두이다. 리더는 누구인가? 카리스마 작열하는 사람은 리더십이 강한가? 그래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노는 꼴을 보고 “저놈은 장군감이야” 라며 리더를 점지해 주셨던가? 그렇다면 조용하고 수줍어서 카리스마를 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은 리더십이 약한 자인가?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집단보다 개인 중심이다. 비즈니스도 물리적인 공간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는 플랫폼 중심이다. 개인과 플랫폼 중심에서는 여느 때 보다 수평적 관계가 필요하다. 수평 사회에서는 리더십의 필요성이 줄어들까?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그때그때 다르다.

집단생활이 본격화된 초기에 리더십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 말씀처럼 개인의 타고난 기질, 행동특성, 성향으로 리더십이 있고 없음을 결정했다. 리더십 자질론이라고 한다.


이후 타고난 사람만이 리더가 되기에는 조직도 커지고 필요한 영역도 많아졌다. 한마디로 리더의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잘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무슨 행동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을 연구하여 따라 하면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리더십 행동론이다. 이렇게 해서 최고의 리더를 벤치마킹하는 교육이 퍼졌다. 나도 리더가 된 이후 20년간 수많은 따라 하기 교육을 받았다.


‘감성지능’을 제창한 다니얼 골맨은 리더십을 6가지 형태로 분류했다. 카리스마형 (까라면 까!), 목표 성취형 (가자! 앞으로!), 비전 제시형 (나를 따르라!), 민주형 (여러분. 토론합시다!), 친화형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코칭형(모든 사람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리더십이 그것이다.


무엇이 바람직한 리더의 스타일인가? 리더 생활 20여 년 만의 결론은”그때그때 달라요”


위기 상황이다.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해 오랜 토의로 대처방안을 마련할 것인가? 아니다. 위기 때는 상황을 빠르게 분석하고 신속한 실행을 위한 명령, 지시, 감독의 카리스마형이 적합할 것이다.


구성원들이 이미 충분히 동기부여되어있는 경쟁력 있는 팀을 맡았다고 하자. 여기에 리더가 일일이 잔소리하며 따라다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은 짬만 나면 구직사이트를 뒤질 것이다. 특히 MZ 친구들과 실력자들은 말없이 제 갈길 간다. 이들에겐 도전적 목표를 공유하고 비전만 제시하면 된다. 그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구성원 역량의 낮고 자발성이 떨어지는 조직에서 참여와 토론의 민주형 리더십이 적합할까? 아마 무엇 하나 결정 못하고 같은 주제를 맴돌 것이다. 이때는 학습의 환경, 멘토링, 세밀한 지시와 점검, 피드백 등 이런 것이 먹히지 않을까?


새로운 환경이 빠르게 펼쳐지고 있어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혁신의 순간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가보지 못한 길에서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자신보다 더 반짝이는 팀원들에게 판을 깔아 주고 정리해 주면 되지 않을까?


몇 년 전 들었던 나영석 PD의 특강 중 그의 성공을 설명한 말이 생각난다. 어눌한 시골 아저씨인 나 PD는 말했다. "저요? 전 실제로 별로 한 것이 없어요. 그냥 팀원들이 격렬하게 아이디어를 낼 때 옆에서 구경했어요. 그리고 될 만한 것을 골라 집요하게 본부장을 설득해 예산을 딴 것뿐이에요."


장기간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김태호 PD와는 사뭇 다른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김 PD는 그 자신이 천재인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밀고 나오는 것 같다. 안방을 책임지는 걸출한 두 PD는 극과 극의 리더십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상황과 구성원에 따라 각기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떤 책에서는 골프채 리더십이라 표현했고, 나의 코칭 리더십 스승은 ‘리더십의 모자 바꿔 쓰기’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이다.


그렇다. 롱홀에서 티업 하면서 아이언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괴력의 소유자라면 몰라도. 그런데 이것도 답은 아니다. 눈앞에 한 번에 넘기 힘든 해저드가 있다면 드라이브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린에 올라서서 긴 채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는가? 평소 카리스마 작렬하는 사람도 숨도 아껴 가면 소심하게 퍼터를 움직일 것이다.


나는 어땠는가? 보통 세컨드샷으로 잡는 우드가 유난히 잘 맞았다. 드라이브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경우가 많아 동반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비탈에서도 잘 맞았고 단단한 샌드 벙커에서도 쭉쭉 잘 나갔다. 심지어 짧게 잡으면 아이언보다 거리 맞추기가 쉬웠다. 그러다 우드가 삐끗하기 시작했다. 다른 클럽을 주로 백 속에 모셔두고 있었던 지라 그때부터 샷은 형편없어졌다. 그리고 골프 지진아가 되었다.


내 리더십도 이러했을까? 나의 기질 대로, 내가 성공한 특정 상황에 매달려 동일한 스타일을 고집했나? 신속을 요하는 순간에 팀원들에게 이것저것 검토시키느라 시간을 소비했고, 반대로 긴 호흡이 필요한 순간에 당장의 결과를 위해 성마르게 그들을 독촉 하진 않았나? 역량 있는 직원에게는 권한을 위임했고,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직원에게는 차근차근 숙제를 주고 수시로 피드백을 했는가? 유연해야 할 때 강했고, 물러서야 할 때 버티지는 않았는가? 내 골프가 내 리더십을 반영했다.


그간 내가 상황과 구성원에 따른 적합한 채를 선택치 못했음을 몇 년 전에 깨달았다. 더불어 나름 리더십의 결론도 얻었다. 상황과 구성원에 따른 유연한 리더십에 가장 가까운 것이 코칭 리더십임을. 이후 나는 코칭 리더십을 뼈대로 삼으며 상황과 직원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긴 시간 굳어진 내 행동 특성을 단박에 바꾸기에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어쩌면 다시 20년의 리더 생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조직 생활은 거의 끝나간다.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다시 힘을 낸다. 내 리더십이 좀 더 유연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자각하지 않았는가? 모든 변화는 알아차림과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 순간이 새로운 출발점인 것이다.


그렇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30년 조직 생활보다 더 긴 시간이 내 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조직에서의 기회는 다시없을지라도 삶의 다른 장면에서 여러 가지 골프채를 잡아 보련다. 우리 인생 자체가 죽을 때까지 어디서든 이끌고 이끌리는 리더십의 현장 아니겠는가?

후배 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당장 시작하시라! 나처럼 하지 마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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