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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Sep 19. 2023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나요?

  가끔씩 민물낚시 출조를 함께 하는 친구의 뜰채망이 너무 촘촘하고 물기가 잘 안 빠져 2주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격은 싸지만 냄새도 나지 않고 세탁할 필요 없는 소재의 뜰채망을 친구 주소로 주문한 후 친구에게 통보해 주었다. 며칠 후 친구로부터 틀채망이 오지 않고 뜰채집만 왔다는 전화가 왔다.  

  어찌 된 일인지 업체에 전화를 해보니 내가 옵션 선택을 뜰채집으로 잘못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대답을 하였다. 분명히 뜰채망을 선택하여 주문했으니 확인해 보라고 했더니 자신들은 쇼핑몰에서 통보해 준 대로 물건을 발송했으니 쇼핑몰에 전화해서 확인해 보라고 하여 쇼핑몰에서는 반품 후 배송을 해야 하니 포장을 해서 밖으로 내놓으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뜰채집이나 뜰채망이나 가격이 얼마 되지 않으니 번거롭게 반품하고 할 필요 없이 내가 뜰채집 가격을 보내줄 테니 계좌를 알려주고 주문한 뜰채망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시스템상 그렇게는 할 수 없고 교환 및 환불을 신청해야만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상 곧바로 주문한 상품을 보내줄 수 없고 잘못 배송된 상품을 먼저 회수해야 주문한 상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반품을 해야 하니 뜰채집을 포장해서 밖으로 내놓으라고 했는데 하루가 지난 후 언제 회수해 가나 확인해 보니 추석연휴 기간 한 달 동안은 회수가 안된다는 내용의 안내문구가 보였다. 상담사들과 며칠에 걸쳐 몇 번의 통화를 하였으나 자신들은 회사시스템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교환 및 반품 후 환불만 가능하고 상품을 먼저 회수해야 주문한 상품을 보내줄 수 있고 환불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쇼핑몰의 시스템에 따라 쇼핑몰에서 교환 요청을 해주었으나 회수기간이 한 달이나 걸린다는 말을 듣고 교환요청을 취소하였다.

  고객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당신들이 잘못된 상품을 보내주었으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상품을 보내주는 것이 맞지 않냐? 며 당신들의 절차에 따를 수 없으니 당신들이 잘못 배송한 상품을 알아서 회수해 가고 주문한 상품이나 보내라고 따지기 시작하였다.

  7,060원짜리 뜰채망 때문에 며칠씩 전화하고 시간낭비하며 옥신각신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내가 잘못된 시스템을 방관하고 지나치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하니 상식적인 선에서 처리해 달라는 말을 하였다. 며칠 동안 쇼핑몰과 나의 줄다리기는 계속되었고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애꿎은 상담사님들을 괴롭힐 마음이 추호도 없으며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내 의사를 전달해 달라는 말을 하였으나 내 의사가 관철되어 대형 쇼핑몰의 시스템이 소비자 위주로 바뀌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어 실없이 웃음 지었다.

  현직에 있을 때 퇴직을 2년여 남은 시점에 수용자들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팀장과 의견 충돌이 생겼는데 나는 신뢰를 주장하며 내게 소속된 수용자들에게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하였고 다른 팀장은 수용자들에게 무슨 신뢰를 지키냐? 며 자신에게 소속팀 수용자들을 배려해 주며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을 하였고 양보하지 않고 있었다. 모든 팀장들이 모인 과장 주재 회의에서 나는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꼼꼼히 챙겨 제시하자 과장이 하는 말이 "아직도 열정이 남아 있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퇴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적당히 하고 나서지 말고 조용히 쉬다 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때의 여운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대형 쇼핑몰 상담사에게" 7,060원밖에 안 되는 상품 가지고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냥 버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네요."라는 말을 하며 현직에 있을 때 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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