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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Jun 22. 2023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젊은 날 길고 긴 방황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수없이 되뇌었던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글이다.

  교도관이 된 후 길고 긴 방황의 터널에서 벗어났을 때 AJ 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는 내 정신세계를 지배하였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치셤 신부처럼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며 내 할 일을 해 나갔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기다가 오만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하며 수용자들을 대했고 교도관 생활을 하는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의 정신적 육체적인 질병으로 인하여 내 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랐고 아내를 중심으로 생활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텨 나갔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제2의 인생을 출발한다고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가 하면 아내와 함께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아내의 병 수발을 하며 지내야 하니 답답하기도 했지만 내게 주어진 길이려니 생각하고 나라도 건강해서 아내를 돌볼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잠에서 깨어 나를 남편이 아니라며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하며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남편이 천당에 갔다며 울면서 나에게 왜 남편 옷을 입고 있냐? 며 모르는 사람이니 나가라는 말을 하며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내를 돌봐줄 수도 없고 도저히 방법이 없어 버티기 힘든 상황에 빠졌고 며칠 동안 계속 눈물만 나왔다.     주변사람들과 아이들에게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노트북 영화와 같이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내를 돌보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내가 이런 상태에 빠진 후 두 달여 동안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젊을 때는 날개를 꿈꾸었지만 나이 들어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태에 놓여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천국의 열쇠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젊은 날 내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치셤 신부의 삶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은퇴해야 할 노년의 나이에 본국으로 돌아온 치셤신부는 고향에 돌아와, 7살 난 고아인 꼽추어린이를 데려다가 기른다. 이 아이는 치셤신부가 한때 사랑했던 노라의 딸 주디가 낳은 아이다. 주디는 아이를 낳고 사망하여   치셤신부의 어머니와 같았던 노라의 어머니 폴리 아주머니가 키우던 안드레아로 치셤 신부는 이 아이를 돌보는 것을 그의 마지막 사명이자 봉사로 생각한다.

  "하느님이 나를 중국에서 여기로 오도록 하신 것은 오로지 이 아이 때문인 것이다."


  버려져 학대받는 안드레아를 찾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어려서부터 자신과 너무도 다른 사고방식으로 물과 기름과 같이 지내온 안셀모 주교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는 치셤 신부, 남은 삶을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치셤 신부의 모습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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