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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Nov 27. 2022

믿을 놈을 믿어야지

  20대 초반에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반대하는 여자 측 가족과 친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조폭 수용자 J의 민사재판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성격이 급하고 포악하여 자신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킬레스건을 끊는 등 자해를 일삼아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수용자라  법정 안에서 수갑을 풀어주고 유사시 사태에 대비하여 수용자 바로 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J 수용자가 직원 N을 고소한 사건이었다.

  J가 수용되어 있던 곳의 담당이었던 N은 J와 같은 문제수들을 많이 다뤄본 직원으로 문제수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직원이라 직원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수용자 J가 어떤 요구를 해도 잘 들어주지 않고 일반수용자와 똑같이 대하자 J가 N직원에게 불만이 많았고 N이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하였다는 이유로 300만 원을 요구하며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N직원은 J에게 욕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여 1년 넘게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J가 재판부에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문제라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자 재판부에서는 화해를 권고하였다.

  교도소에 복귀한 J가 N직원에게 "큰소리를 치고 욕을 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내용의 글만 한 장 써주면 아무런 조건이나 요구 없이 재판을 종결하겠. 남자대 남자로 약속한다."라고 하자 N직원은 J의 말을 믿고 글을 써 주었다.

  그러자 화해를 할듯했던 J의 태도가 돌변하여 N직원이 써준 글을 재판부에 증거물로 제출하며 소송을 계속하였고 N과 J의 소송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직원들은 마지막에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N에게 "바보같이 그걸 왜 써줘 믿을 놈을 믿어야지"라고 말하자 N은 신경 쓸 것 없다는 것이었다.

  N이 재판부에 "J에게 써준 내용은 1년 넘게 재판을 하는 것도 지겹고 짜증이 나기도 하던 차에 J가 남자대 남자의 약속이라고 해 재판을 종결시키기 위해 써준 것이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여  또다시 팽팽히 대립하며 재판이 진행되었다. 

  법정 앞에는 수십 건의 재판이 시간대별로 적혀 있는데 판사들이 과연 그 많은 사건들의 기록을 다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나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이 사건이 종결되려면 앞으로도 몇 달,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지루하게 늘어지는 재판에 당사자들은 지겹고 짜증도 날만 했다.

  N이 다른 소로 전출 가는 바람에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N이 그 소송 결과로 인하여 아무런 문책을 받지 않았다는 걸 보니 잘 해결된 것 같다.

  선배들이 수용자와 문제가 생겼을 때 섣불리 합의하지 말고 끝까지 가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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