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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11. 2024

잃어버린 아내 29

  아내와 매일 아침 천변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보면 80대로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을 거의 매일 보게 된다. 어르신은 배낭을 메고 천변을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무엇인가에 앵글의 초점을 맞춘다. 무엇인가에 몰두하여 심혈을 기울여 작품사진을 찍는 것 같은데 어르신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너무도 볼품없는 것들이다. 시들은 풀밭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하천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앵글을 조절하기도 하는데 하천에 무엇이 있나 쳐다보면 물새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을 찍으려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아마도 어르신이 젊은 시절엔 사진작가였으리라 추측해 보는데 치매 아내를 태우고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길을 드라이브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어르신도 검은색 계통의 허름한 복장으로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길을 걸으며 카메라를 들고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앵글의 초점을 맞추곤 한다. 아마도 치매에 걸리신 것 같다.


  안개가 짙게 낀 어느 날 어김없이 아내를 태우고 천변길 드라이브를 하는데 어르신도 검은 옷에 배낭을 둘러맨 채 채 천변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무엇을 발견했는지 카메라를 꺼내 들고 하늘을 향해 앵글을 맞추고 있었는데 무엇을 찍으시려는지 궁금해 쳐다보았더니 안개가 짙게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르신은 도대체 무엇을 찍고 있는 걸까?

  나는 잠시 차를 멈추고 어르신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르신이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무얼 찾아 헤매는지 모르겠지만 안갯속 허공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인 것 같아 한동안 어르신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아내기 빨리 가자고 하여 어르신의 모습을 뒤로 한채 출발하였는데 룸미러로 어르신의 모습을 쳐다보니 카메라를 안갯속 허공을 향한 그 모습 그대로 서서 앵글을 조절하고 있었다.


  천변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찍을 거리들이 많은데 도대체 왜 볼품없이 허접한 것들 주목받을 수 없는 것만 찍을까? 어르신의 모습이 안갯속 미로를 걸어가는 내 모습인 듯싶어 어르신과 마주칠 때마다 유심히 쳐다보고 어르신의 모습을 찍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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