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Feb 10. 2024

잃어버린 아내 28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꿈 때문에 미칠 것 같다. 꿈속에서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며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활발한 삶을 살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이런저런 생각에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 속에 멍하니 누워있으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앞날에 대한 두려운 생각들이 밀려오기도 한다.


  아들이 9월에 연수원 교육을 받고 바로 발령을 받는데 8월 중순에 알아보니 집 근처엔 결원이 없어 멀리 남쪽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더군다나 1차 교육생들 중 끝순번으로 끊긴 아들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하였다. 성적순으로 자신의 근무지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라 아들보다 필기점수가 높은 사람들보다 연수원 성적을 월등히 높게 받는다는 것을 기대할 수 없고 허리까지 다친 상태라 체력과목도 불리하여 집 근처에 발령받는다는 생각을 아예 못할 상황이었다. 아들에겐 시험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집생각 하지 말고 네 갈길 찾아가는 것이 아빠를 위한 거라고 말은 했지만 걱정이 밀려온다.


  치매 걸린 사람이 망상이 심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다. 계속 비위를 맞추며 잘한다는 표현을 하며 온화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시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제하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지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치매는 거기에 상응하여 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며 망상도 더 심해진다. 돌보는 사람은 버티고 버티다 번아웃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내가 아내로 인해 감정조절이 안돼 버거워할 때 아들이 나서서 아내를 캐어해 주었고 아내가 내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다가도 아들이 나서면 강도가 약해지곤 했다. 나 역시 격앙되었다가도 아들로 인해 평상심을 되찾곤 했었다. 그런데 아들을 떠나보내고 나 혼자 아내를 돌보게 될 상황이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는데 아들에겐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들을 연수원에 데려다주며 결원도 없고 불리한 상황이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결과에 대해선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는 말을 하였다. 아들은 일요일 저녁에 들어가서 금요일 저녁에 나왔는데 한 달 넘는 교육기간 중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불안 불안하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였다. 아들을 연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올 때 아내를 태우고 갔다 왔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이상행동을 하기는 했으나 운전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들의 연수원교육 마지막주 시험이 있는 주에 아들을 연수원에 데려다주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아들이 멀리 남쪽 지방으로 발령 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생기겠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저히 헤쳐 나갈 방법이 없었을 때 "케세라 세라" 하며 흘러가는 대로 맡기다 보면 희한하게 잘 풀리기도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들이 멀리 남쪽 지방으로 발령 나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고 희박하지만 8월 말 명예 퇴직자나 고충전보자가 발생해 결원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해주며 최선을 다하라고 하자 아들이 결원이 8명 이상 발생해야 하니 기대하지 않으시는 게 좋다며 "최선을 다하긴 할게요"라는 말을 하였다.

  아들이 연수원 시험이 끝난 후 카톡을 보냈는데 합산점수로 100명 이상을 추월하긴 했는데 집 근처를 선택하긴 힘들 것 같고 차선책으로 선택할 몇 곳을 보내왔다. 나는 어쩔 수 없다며 어느 곳으로 가더라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며 아들이 선택할 1,2,3순위를 보내주었다.

  다음 날 근무지를 선택하는데 아들이 집 근처 근무지에 결원이 7자리 나왔는데 집 근처 사는 교육생이 아들 앞순번에 7명이 있어서 아들 앞에서 끊길 것 같다며 멀리 남쪽까지는 안 가도 될 거라는 카톡이 왔다. 그나마 잘됐다는 답장을 보내고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는데 아들이 집 근처로 발령받았다는 카톡이 왔다. 나는 너무도 기뻐서 "잘했다. 고맙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나! 이렇게 도와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벅찬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아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 고 물어보니 바로 앞순번에 있던 고등학교 후배 교육생이 아들에게 "형 집 근처로 가요"라고 말한 후 다른 근무지를 선택해서 마지막 자리를 아들이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집 근처 근무지의 +1명 결원이 8월 말 명예퇴직자와 고충전보자가 발생해서 -7명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잃어버린 아내 2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