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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09. 2024

잃어버린 아내 27

  아내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같은 옷을 계속 입는다고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치매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밖에 나갈 때도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간다고 고집을 부리면 난감하지만 일단은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고 잠옷일지라도 그 상태로 나가 드라이브한다. 옷을 억지로 갈아입히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상태가 안 좋아지기 때문이다. 소변이 묻은 옷을 갈아입히려 할 때도 안 묻었다며 갈아입지 않으려 내 옷 내놓으라며 난리를 칠 때도 있다. 이런 아내를 대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똑같은 옷을 두, 세 개씩 사 와 아내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가게 한 후 얼른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요즈음 아내가 요실금 증세가 있어 버티고 버티다가 호전되지 않아 복지용구매장 요실금 팬티를 사용하려 했더니 아기들 기저귀처럼 두꺼워 아내가 착용하려 하지 않고 밖에 입고 나갈 수도 없어 속옷 판매가게에 직접 찾아갔더니 일반 팬티와 비슷하면서 주요 부분만 흡수가 잘되는 얇은 패드를 넣은 것을 사 왔더니 아내가 거부감 없이 잘 입어 다음날 몇 개 더 사 오고 며칠 후 잠옷이면서 외출복을 겸할 수 있는 옷을 몇 개 더 사 왔다. 그 매장 옷을 아내가 거부감 없이 입기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똑같은 옷을 두, 세 매씩 계속 사가자 매장 아주머니 한분이 가족 중에 치매 걸리신 분이 있나 봐요?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말하자 자기 아버지도 치매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한걱정한다. 그 얘기를 듣자 "초기 때가 망상이 심하고 힘들어요. 잘못하면 가족들 골병들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아내를 간병하다 위험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안방 화장실에서 아내를 씻기고 아내가 욕조에서 나올 때 양손으로 잡아주었는데 아내가 미끄러지기에 잡아주다가 나도 중심을 잃으며 아내를 안은채 뒤로 넘어지면서 벽아래 부분에 세게 머리뒤쪽을 부딪힌 것이다, 딱 소리가 나는데 드라마에서 뇌진탕이 일어나는 장면이 떠오르며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거실에 있던 아들이 달려왔고 나는 멍한 상태에서 일어나 괜찮다는 말을 하며 일어났는데 큰일 날 뻔 한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의 위험한 상황은 아들에게 일어났다. 요양보호사 학원에 있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몇 번 와 있기에 전화해 봤더니 엄마가 대변이 급하다고 해서 거실에서 업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내려놓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어 옴짝달싹 못하고 거실바닥에 엎드려 있다는 것이었다.  큰일 났다 싶어 황급히 집으로 가보니 아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려 있고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에게 냉찜질을 해준 후 병원에 데려갔다. 어린아이 달래듯 아내에게 설명한 후 병원에 갔다 올동안 잘 있을 수 있냐? 고 물어보니 다녀오라고 한다.

  CT 촬영 후 뼈주사까지 맞았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한 달여간 치료를 받으며 조심해야 한다는 알을 들은 아들이 "아빠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일주일 전에 공무원 체력시험에 합격하여 최종합격 후 연수원 교육을 앞두고 있는 아들이 체력시험 전에 허리를 다쳤다면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 됐을 상황을 떠올린 것이다.


  엄마로 인해 실의에 빠져 자신감을 잃은 아들들에게 난 이런 말을 해준다. "진인사 대천명"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다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이지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림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한다.

  아들이 지나온 순간들을 회상하며 하느님께서 도와주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여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오빠가 정년퇴직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한디."라고......

  정년퇴직 때까지 교도관으로서 소임을 마치게 해 준 것에 감사드리며 지금의 현실도 내게 주어진 소임이라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날들 하루하루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앞날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흔들리는 날에는 이런 말들을 되뇌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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