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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08. 2024

잃어버린 아내 26

힘이 되는 말, 맥 빠지는 말

   아내가 천변을 따라 드라이브하고 짧은 거리나마 걷기 연습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아 아침마다 데리고 나가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내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부축하며 걷기 시작한 지도 2년이 다되어 가는데 자주 만나는 분들이 있다. 주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인데 아내를 대하는 모습이 다양하다.

  보행기를 밀며 거의 매일 마주치는 80대 할머니 한분은 어느 날 아내에게 한라봉과 두유를 주시기에 극구 사양했는데도 힘내라며 주시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았다.

   "힘내세요. 이팅", "많이 좋아졌어요."라는 말을 해주는 분들의 말을 들으면 아내의 표정이 밝아지고 한걸음이라도 더 걸으려 한다.


  어떤 분들은 지나가면서 맥 빠지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 중 어떤 분들은 "쯧쯧 젊은 사람이 어쩌다..." 아내가 듣는데도 그렇게 얘기하며 지나간다. 한마디 해주고 싶어도 참고 아내의 표정을 보면 안 좋다. 어떤 분들은 보행기를 잡고 걸으라고 하기도 하고 어쩌다 이렇게 됐냐? 며 꼬치꼬치 캐묻는 분들도 있다. 모두들 아내를 위해서 하는 말들이겠지만 맥 빠지게 하는 말들이다.

  맥 빠지는 말을 할 때면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상대방의 말을 끊곤 하는데 주책없이 계속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는 아내의 걸음걸이에 대해 물어보는 아주머니한테 "많이 좋아진 거예요"라고 대답했더니 "좋아진 게 이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 말없이 아내를 부축하며 걸었다.


  은행업무나 병원 서류 발급 등 일을 처리하러 갔을 때도 힘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가 동행할 수 없어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을 지참하고 아내의 만기예금을 그대로 다시 예탁하려 하는데도 원래는 본인이 와야 한다며 지극히 사무적인 말투로 대하는 은행 직원괴 아내의 진단서 발급 시 병원 원무과 직원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내로 인해 전투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우체국 어느 직원의 태도는 달랐다. 그 직원의 업무 처리는 결론적으로 내게 불쾌함을 느끼게 한 은행직원과 같았지만 말 한마디라도 내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도와드리고 싶은데 규정상 이렇게 되어있어 어쩔 수 없네요라고 말하는데 마치 가족이 치매를 앓고 있는 듯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너무도 고마워서 그 직원의 이름을 외워 와 국민신문고 정보통신부에 칭찬하는 글을 올려주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내를 걱정하며 도와주려 하고 있다. 나쁜 의도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의도로 말했더라도 힘이 되는 말이 있고 맥 빠지게 하는 말이 있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나도 생각 없이 툭툭 던진 말들이 많았다. 그 말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내에게 한 마디씩 던지는 사람들로 인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멊었다는것을 느끼게 됐다.


  아내와 외출을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넓은 자리에 주차했던 차가 좁은 자리로 이동한다. 11층 고마운 이웃이다. 아내가 차에서 내릴 때 내가 부축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편하다는 것을 아는 분이 나보다 먼저 주차장에 들어와 넓은 자리에 주차했다가 내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좁은 자리로 이동해 준 것이다. 나는 유리창을 내리고 "괜찮아요. 안 옮겨주셔도 돼요."라고 말했는데도 번번이 그렇게 양보를 해주고 엘리베이터나 주차장에서 만날 때마다 아내를 걱정해 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힘이 되는 고마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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