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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07. 2024

잃어버린 아내 25


  부천에 사는 친구가 책 한 권을 보내줬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것을 아는 친구가 밥은 어떻게 해 먹냐? 고 물어보기에 내가 직접 만들기도 하고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양념고기, 반찬 등을 사다 먹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한다고 말하자 도움이 되는 책을 보내준 것이다.

  암에 걸려 요리를 못하게 된 아내를 위해 아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몇 년간 요리해 주었던 음식의 레시피를 엮어 만든 책이었다. 다양한 요리와 음료까지 내가 따라 하기에는 벅찬 요리들이었다. 내가 하는 요리는 한정되어 있고 짧은 시간에 쉽게 해 먹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소고기뭇국 등 레시피는 도움이 되었다.


  아내를 시시때때로 지켜봐야 하는 내게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음식 만들고 하는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고기 뭇국, 소고기 미역국, 카레, 김치찌개(돼지고기, 생선 등을 넣고 끓인 것)를 직접 만들고 부대찌개, 소불고기, 양념 돼지고기, 닭갈비 등 양념되어 있는 것을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 조리해 먹고 밑반찬은 시장에서 사다 먹는다.  "오늘은 뭘 해 먹지?" 고민하다 보면 아들이 리뷰 좋은 곳을 찾아 시켜서 먹기도 한다.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 외식을 못 한지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그동안 아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수많은 조리용품, 그릇, 양념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꽉 차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묵혀두기 아까워 지인들에게 나눠 주려해도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주기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을 확인하고 안 보이면 누가 훔쳐갔다고 난리를 친다.

  얼마 전에는 몇 년 전 김장할 때 사용하려고 사두었던 천일염 1포대의 자루가 삭아서 흘러내리기에 앞으로 집에서 김장할 일이 없을 것 같아 여동생과 친구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았던 천일염을 갑자기 찾아 애 먹은 적이 있다.

  주방을 정리하다 보니 유효기간이 지난 튀김가루, 고추장, 간장, 식초 등 양념류가 가득 차 있는데 버리지 못하고 있다. 냉동실엔 고춧가루, 깨소금, 새우젓, 멸치 등이 가득하다. 5년도 넘은 것들이다. 아내는 해마다 집에서 김장을 했고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울 만큼 김치 욕심이 많아 고춧가루와 새우젓을 꽤 많이 샀는데 어느 해부턴가 김장을 하지 못해 고춧가루와 새우젓 등이 몇 년째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몇 달 전 여동생에게 고춧가루 몇 봉과 멸치 몇 봉을 보냈는데 아내가 갑자기 냉동실 문을 열어 고춧가루와 멸치 등을 확인해서 난감한 적이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1/3 정도만 보냈기에 둘러대며 넘어갈 수 있었다.

  유효기간이 몇 년씩 지난 양념류를 보니 아내의 세월이 그때부터 멈추기 시작했는데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내의 손때가 묻은 멈춰있는 살림살이들을 보니 눈물이 나온다. 며칠 전에는 과감한 결단을 했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과 같거나 비슷한 포장이 되어 있는 것들을 사 온 후 바꿔치기 한 후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들을 모두 버린 것이다. 다행히 아내가 눈치를 못 챘다.


  집안 구석구석 정리하고 청소하다 아내의 오래된 물건들 중 쓸모없이 공간만 차지하는 것들을 아내 몰래 버리고 있다. 필요한 것들은 새것으로 사고 있는데 아내가 얼마나 절약하며 살았는가를 깨닫게 된다.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고 운동화도 싸구려만 사서 신던 아내가 15만 원 정도 되는 메이커 신발을 사다 주니 좋다고 신는다. 아프기 전에는 5만 원 넘는 신발도 비싸다고 안 신던 아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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