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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03. 2024

잃어버린 아내 24

원예치료, 음악치료......

   오늘은 드라이브하면서 아내가 어느 집 담장 위에 핀 장미를 보고 예쁘다고 하여 무슨 꽃이냐? 고 물어보니 장미라고 대답한다 몇 월에 피는 꽃이냐? 고 물으니 5월이라고 대답하고 집에 와서도 5월이 펼쳐진 달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금 10월인데 왜 5월 달력을 걸었냐? 며 빨리 10월로 바꾸라고 말했었다.

  아내가 밭에 심겨져 있는 배추, 오이, 고구마, 고추, 감자 등의 이름을 말하고 소정리 산책 길도 알아보고 걷는 연습을 하려고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내가 극도로 안 좋을 때에는 씻지도 않으려 하고 양치질도 안 하고 옷도 안 갈아입으려 하고 나를 거부하고 이상행동을 하기 때문에 드라이브도 힘들었었다. 그런데 5.1. 이후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드라이브 나가는 것도 순순히 따라나선다.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집에서 출발하여 천변길로 들어서면 시속 30km 미만의 속도로 천천히 운전하면 아내는 조수석에서 편한 자세로 라디오를 들으며 바깥 경치를 구경한다. 오른쪽에 개천이 흐르고 왼편엔 논밭인데 각종 농작물이 심어져 있다. 벼, 배추, 오이, 가지, 옥수수, 호박...... 꿩이 보이기도 하고 고라니가 풀숲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길이 쭉 길게 이어져 있다. 천변길이 끊기면 도로를 잠시 달리다 다른 천변길로 들어간다 차가 거의 안 다니고 인적이 드문 길이라 천천히 다니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아내가 걷는 연습을 하는 유일한 곳은 소정리 천변 길이다. 2년 전에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걸었는데 몸이 불편해진 뒤론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만 걸으려 한다.

  나는 어떻게든 아내를 데리고 나가려 한다. 아내의 정신적인 치유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 꽃들이 피고 지고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에 아내는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사연에 반응하기도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편안히 잠을 자기도 한다. 아내가 아침마다 드라이브를 다니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요양보호사 학원에 다니면서도 아침  드라이브는 빠짐없이 나가고 있다. 갔다 와서 아들에게 아내를 맡기고 부랴부랴 학원으로 출발한다.


  아들이  "5.1. 처녀귀신 사건 이후에 엄마가 많이 좋아졌어요. 아빠를 조금씩 알아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기에 나도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여 아내에게 내가 누구냐? 고 물어보니 밥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당신 남편이라고 말하자 아니라고 화를 내며 남편은 천당에 갔다는 대답을 한 후 남편 옷 벗어놓고 나가라고 한다. ㅠㅠ 물어보지 말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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