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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16. 2024

잃어버린 아내 30

  5,1, 처녀귀신 사건 이후 아내가 매일 오전 2시간 내외로 천변 드라이브와 걷기 등을 하며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 간헐적으로 나를 부를 때 "여보",○○아빠"라고 불러 나를 남편으로 알아보나 보다 싶어 물어보면 아니라고 화를 내며 말했는데 그렇게 세 달여간 거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가 나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작은방에서 자던 내가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 밑에서 자기 시작했는데 나가란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안 좋은가 싶었다가도 두 시간여의 천변 드라이브 중 오른쪽으로 시냇물이 굽이굽이 길게 이어지며 왼쪽으로 드넓은 밭에 심어져 있는 오이, 호박, 가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고추, 배추, 파 등의 작물과 꽃, 익어가는 벼, 배추밭을 보며 평온한 마음을 되찾아 가는 일상 속에서 망상이 거의 없어지고 정신이 많이 회복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늦가을이 되면서 아내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변 드라이브를 하는 도중에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밭에 심어져 있는 배추, 오이, 가지 등의 이름을 물어보며 말을 걸면 정신이 돌아오곤 하는데 집에 돌아와 이상증세가 나타나면 방향 전환이 쉽지 않다. 드라마를 보며 몰입되면 말을 붙여도  tv만 쳐다보며 대답하지 않는다. 밤새 잠을 안 자고 이상한 얘기를 해서 자세히 들어보면 드라마 속 폭력적인 내용, 안 좋았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에서 간절하게 사정하기도 도망가라고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것이었다. 아들과 상의한 후 아내의 TV 시청시 아내의 정신건강에 좋은 내용만 틀어주고 폭력성 있는 드라마나 자극을 주는 장면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기로 했다.

  어제는 밤새 잠깐씩 잠들었다 일어나 앉아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반복하였다. 꿈을 꾸는 것이라고 진정시키고 재우면 10분도 안되어 또 깨고 이런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염려스럽다. 어느 순간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에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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