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Dec 09. 2021

호송버스 안에서


“무슨 기술 배우러 가죠?”

“산업디자인 신청했습니다.”

“저는 자동차 정비 신청했습니다.”

해마다 12월이면 직업훈련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교도소 각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생을 모집하여 선발된 직업훈련생을 집금 시켜 교육을 실시하는데 우리 소에서 선발된 수용자 두 명이 직업훈련교도소로 가는 호송차량 안에서 내 질문에 각각 자신이 앞으로 배우게 될 과정에 대해 말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구상을 하는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2명의 수용자는 30대 안쪽의 젊은 수형자로 앞으로 2년여간 수형생활을 더해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기술을 배워 사회에 나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굳은 다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목적지인 영등포교도소에 도착해 두 수형자를 인계하고 2년간 직업훈련을 마친 수형자 한 명을 다시 우리 소로 데리고 가기 위해 대기실로 가보니 영등포 교도소 직원이 안면이 있는 청년 수형자 한 명을 우리에게 데려다주었다. 청년은 “저는 이제 25살인데 성인교도소로 안 가고 소년교도소로 다시 돌아가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며 호송버스에 올랐다. 청년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7년여 전 내가 우리 소 거실지정 담당이었을 때 신입으로 받았던 앳된 얼굴의 소년 S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소년교도소에서의 기억을 되살리는 몇 마디의 대화와 함께 S와 나는 어느새 정감 어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등포에서 무슨 기술 배웠니?”

“2년간 건축시공을 배워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대단하네! 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사회 나가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예. 나가면 열심히 살아야죠. 아버지께 잘해드려야죠”

호남형의 청년으로 점잖은 말씨의 S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출소하면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녀석의 형기를 물어보았더니 아직 7년 남았다고 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휩쓸려 다니다가 살인죄를 저질러 8년을 복역한 S의 얼굴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시 S에게 학교는 어디까지 다녔냐고 물어보았더니 중학교 중퇴라고 대답했다.

소년교도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경험으로 볼 때 S는 결손가정의 아이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며 S에게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라고 물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어렸을 때 아버지와 이혼하신 후 다른 곳에서 따로 살고 계신다고 했다. “어머니한테 연락은 안 오니?”라고 물어보자 “지금 ○○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계시다고 들었고 조만간 접견 오신다고 연락이 왔는데 지금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나는 순간 10여 년 전 접견을 마치고 거실로 가는 도중 눈물을 흘리던 어느 소년수형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틀 후면 출소하는데 3년의 교도소 생활 동안 오늘 딱 한번 접견을 왔는데 접견을 온 사람이 바로 어렸을 때 자신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던 어머니라는 말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S에게 “어머니가 왜 보고 싶지 않은데?”라고 물어보니 “교도소에 있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얼굴이 벌게지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가 “7년이면 많이 남았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아버지의 직업, 나이 등을 물어보니 인테리어를 하고 계시며 연세는 61세라고 대답해 “그럼 네가 나가서 아버지가 하시던 일 도와드리다 물려받으면 되겠네.”라고 말하니 그렇게 할 작정이라며 나가면 속 썩여 드린 만큼 효도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너는 행복한 거다. 아버지가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너를 돌보아 주실 거고 누나도 있잖아! 집도 절도 없어 출소하면 방황하다 다시 죄짓고 교도소 들어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너는 나가면 잘 살겠다.”라고 말하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소년교도소에서 잘 있다 나올 수 있도록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다. 천안소년교도소가 외국인 교도소로 바뀌었다는 말을 하며 “너는 출소하면 32살이고 아직 창창한 나이이니 교도소에서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고 학업을 계속하고 책을 읽으며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 등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 천안에 도착하여 S의 수용생활 기록을 찾아보니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방송통신고를 졸업했으며 배관, 정보처리, PC정비사, 건축시공 등 자격증도 여러 개 취득하며 8년여의 수용생활 동안 착실해 왔으나 가석방 혜택을 받는다 해도 최소한 4년 이상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S는 철없던 16살 홀아버지 밑에서 방황하며 중학교를 중퇴하고 온갖 비행 끝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17년 넘게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소년교도소에서 근무하면서 보람 있는 일도 많았는데 천안이 외국인교도소로 바뀌고 김천이 소년교도소로 바뀌어 소년수형자들과의 오랜 인연은 끝이 나고 외국인 수형자들과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수없이 많은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교도관 생활을 하며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 있는 직장생활을 한 복이 많은 교도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소년교도소에서 함께 근무하던 존경하는 선배 교도관 한분이 대부분의 직원들이 선호하던 구치소로 발령을 내자 소장님을 찾아가 평생을 소년수형자들의 교정교화에 몸 바쳐 왔는데 2년여 남은 교도관 생활을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말씀드려 소년교도소에서 정년을 맞았던 선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간혹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악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년수형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소년수형자들은 결손가정에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며 방황하던 아이들이었다. 소년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해온 17년의 세월은 나로 하여금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하나의 나뭇잎도 온 나무의 말없는 이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범죄적인 환경을 만든 우리 사회 모두의 잘못이며 범죄를 저지른 개인만을 탓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7년 전 17살의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소년교도소로 왔던 S, 영등포교도소에서의 2년간의 위탁직업훈련 끝에 어엿한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한 S를 다시 우리 소로 데려오는 호송버스 안에서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안타까움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수용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