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Dec 10. 2021

유전무죄 무전유죄

  소년수형자들을 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중 하나가 결손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가정파탄으로 발붙일 곳이 없는 소년들은 범죄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사고를 쳤을때 보호해 줄만한 사람도 없고 같은 사건이라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하여 형을 무겁게 받는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 제도가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해 주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변호인에 따라 형량이 좌우되는 모순을 가져오게 되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돈 있는 사람은 좋은 변호사 사서 형량을 낮추고 돈 없는 사람들은 변호사 살 돈이 없어 무거운 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데리고 있는 소년수형자들중 거의 비슷한 사건인데 집안 환경이 좋아 비싼 변호사를 선임한 소년수형자는 2년, 변호사를 제대로 사지 못한 소년수형자는 3년을 받은 사례를 비롯하여 변호사에 따라 형량이 좌우된 사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저런 애가 어떻게 교도소에 들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한 아이가 있었는데 2년형을 받아 사연을 물어보니 길거리에서 할머니들한데 3천원을 빼앗은 사건이었다. 나는 어떻게 그럴수 있나 생각되어 사건내용을 확인해보니 소년수형자의 말 그대로 였다.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형편이 매우 안좋아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었다.(지금은 인신이 구속되면 누구든지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중 하나가 국선변호인 제도를 확립한 것이다.  인신을 구속당한 사람은 누구나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소에서 근무했던 일부 교도관들은 얼마 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던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으로 억울하게 10년의 징역을 살은 ㅇㅇ이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15년전 ㅇㅇ이의 사건과 관련하여 다른 사건으로 조사를 받던 사람이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술하여 TV 시사프로에서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ㅇㅇ이의 어머니와 기자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ㅇㅇ이는 어쩐 일인지 조용했다.

  담당교도관들한테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담당교도관들도 ㅇㅇ이가 평소 조용한 성격에 착실했던 아이라 ㅇㅇ이의 말을 믿고 그가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적극 권유하였음에도 별반응이 없었다. 교도관들 사이에도 말이 많았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때였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던 언론사들은 모두 뒤로 빠지고 ㅇㅇ이만 바보가 되기 때문에 ㅇㅇ이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ㅇㅇ이가 그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 잘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무죄를 받은 것에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ㅇㅇ이가 재심에서 무죄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마음 속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하며 성인이 되어 아내, 아이와 함께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흐뭇해 보였다.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만약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0여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교도소에서 보내지 않았으리라 교도관이 보는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문제가 많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으리라 본다.


작가의 이전글 호송버스 안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