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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Feb 02. 2022

학부모와 부모

큰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닐때 녀석의 컴퓨터가 고장나 수리를 맡기는 과정에서 녀석의 컴퓨터TV오락프로와 영화 등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혼내준 적이 있다. 있는 사실만 혼내준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 덧붙여서 한참을 혼내는 동안 녀석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내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후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무차별적으로 언어폭력을 휘둘렀던 내가 부끄러웠다.

아들녀석의 학교성적이 좋지않게 나왔을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또 퍼붓고 말았다. 화를 낸 후 아들녀석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내가 문제였다. 아들녀석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공부에 지쳐 스트레스를 받을만도 한데 짜증 한번 안내고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녀석에게 부모된 욕심으로 기대치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인해 화를 낸 것이었다.


밤12시가 다된 어느날 아들녀석이 공부하고 있는독서실 앞을 지나가는데 한아이가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 깜짝 놀라 멈주는데 자세히 보니 아들이었는데 아빠한테 혼날까봐 겁에 질려 움츠린채 서있었다.

  순간 가슴이 찡해 잘못한게 없는데 왜 죄지은 사람처럼 그러고 있냐?고 말하며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당신은 부모인가, 학부모인가?'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운전중에 무심코 들었던 이말이 부끄럽게 가슴 속에 와닿았다.

 

십대, 이십대의 내 지난날을 돌이켜보았을 때 공부를 잘한다고 반드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성격좋고 활달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잘 풀린 것 같다. 나는 부모가 아닌 학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를 다그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지며 아이들이 어렸을때에는 무슨 짓을 해도 이쁘고 귀여워서 어쩔줄 몰라 하더니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공부를 조금만 못해도 잡아먹을 듯이 닥달하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실상이라는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났다.

 

올여름에 10여년부터 베란다에서 길러 오던 다래나무를 산쪽 담장 밑에 심어주었다. 귀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애착을 가지고 키워왔으며 열매를 맺은 적도 몇해 있었지만 길게 뻗어나가야 할 가지도 싹둑 잘라 내버릴 수밖에 없었고 여름만 되면 잎이 시들시들해져 볼품 없어 올해에는 결단을 내렸다. 가끔 산책을 갔다오면서 다래나무가 잘 자라고 있나 살펴보니 집에서와는 달리 잎이 파릇파릇해지고 담장을 따라 산쪽으로 쭉쭉 뻗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동안 내 부질없는 욕심이 쭉쭉 뻗어나갈 가지를 잘라내고 시들시들 근근히 생명만 유지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래나무를 볼때마다 나만의 욕심에서 벗어나 놓아주고 비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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