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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Mar 20. 2022

9일 기도의 아픈 기억

1983년 청량리성당 청년레지오 활동을 할 당시 함께 레지오 활동을 하는 형제님의 동생이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단원들에게 9일기도를 부탁했다.

활동대상자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매우 잘했고 여러 가지 재주가 많아 학교에서 상도 많이 탔던 수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출을 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합천해인사에 들어가 몇 년을 생활했는데 군대영장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씻지도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던 안쓰러워 동생에게 해인사에서 어떻게 지냈냐? 고 물어보니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고 하여 그럼 성당에 다니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형제님 댁으로 방문해 9일기도를 시작했다. 9일씩 6번 54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것인데 가족들은 항상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형제님은 9일 기도를 시작한 후 동생이 머리도 감고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좋아했는데 5번째 9일 기도를 하던 어느 날 형제님 댁에 방문했더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동생이 자살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9일기도를 하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단원들은 실의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형제님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9일기도를 계속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10여일 남은 기간을 채워 54일을 채웠다.

  54일을 기도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단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9일기도를 이어갔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직장생활 등으로 계속 참석하지 못했다.


  기도가 끝난 후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너무도 생생해서 무섭기까지 했다. 꿈속에서 단원들과 함께 9일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3번을 절하는 것이었다. 당신 때문에 내가 한곳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꿈이 깼다. 자살하면 구천을 떠도는 혼이 된다는데 내가 9일기도를 해줘서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얘기를 가족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었는데 형제님 가게에 놀러갔다가 형제님의 어머니가 “아이고, 우리 불쌍한 병헌이 자살하면 좋은 곳으로 못 간다는데…….” 계속 반복하면서 곡을 하듯이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병헌이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꿈 얘기를 해 드렸더니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에게 너무 좋았던 아들, 동생들에게 그렇게도 다정했던 오빠가 하루아침에 변해서 그렇게 곁을 떠나갔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아픈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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