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와 사랑 Jul 19. 2022

멈춰버린 아내의 시간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주방에서 식용유, 간장, 튀김가루 등을 꺼내 유효기간을 보니 2018년이었다. 아내가 집안 일을 못하기 시작한 건 5년도 넘었고 그동안 내가 집안 일을 그럭 저럭 꾸려 나갔는데 아내의 영역이 워낙 강해 아내가 관리하던 것들은 유효기간이 지나고 지지분해진 것들도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아내가 무기력해져 며칠전부터 큰맘 먹고 아내의 눈을 피해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아내의 시간이 2018년도에 멈춰 있는 것 같아 갑자기 눈물이 났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을 쓰레기 봉투에 넣으며 아내의 시간이 멈춰 버린 줄도 모르고 회사일에 지쳐 집에 와서도 식사 준비하랴, 설겆이, 청소하랴, 이것 저것 챙기다보면 힘든데 왜 집안 일에 신경을 안쓰고 오히려 나한테 짜증을 내고 힘들게 만느냐?며 수없이 따지고 소리도 지르며 화를 내며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던 지난 일들이 후회스럽게 밀려왔다.

  아내의 병명은 신경퇴행성으로 뇌와 신체가 서서히 안좋아져 가는 병이다. 파킨슨병 비슷하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보행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신경질을 잘 내고 식사도 거의 안하고 결벽증이 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에 과민반응을 보였다.  

  작년 8월 갑자기 정신질환 증세가 심해져 대학병원에 한달여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섬망이 없어졌을뿐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손을 잡아줘야 걸을 수 있고 기억력은 갈수록 쇠퇴해지고 일상의 대부분을 누군가 옆에서 챙겨주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의사의 진단으론 약물로 진행을 서서히 늦출 뿐이라고 하는데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1년여간 아내를 돌보면서 그동안 내가 교정시설에 근무하면서 대했던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을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하게 대해 왔나? 반성하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의 진료와 처방에 의한 약으로 계속 경과를 관찰하면서 조절하며 치료 받아야 하는데 단편적으로 짧은 기간의 이상행동을 보며 처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일부러 또라이 짓을 한다며 강경책을 쓰기도 했다. 


  나는올해 연말에 교정시설에서 떠나 아내와의 시간에 전념하며 아내의 멈춰버린 시간과 함께 하려 한다. 아내가  멈춰버린 시간마저 빼앗길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나와 아내에게 허락하신 시간까지 하루하루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내 남은 삶의 목표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파 사동 오해와 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