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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와 사랑 Sep 04. 2022

초임 시절

  교도관으로 임용되어 첫 근무지인 취사장 보조근무를 가니 취사장 담당이었던 선배 교도관의 첫마디가 “여긴 뭐하러 왔시유? 빨리 공부해서 나가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나가야지 우린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유”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 근무하러 온 후배한테 축하한다. 열심히 근무하라는 말을 해주어야지 교도관 뭐하러 들어왔냐? 빨리 공부해서 나가라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넘겼지만 한편으론 그 선배가 교정조직에 얼마나 회의를 느끼고 있으면 그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소년교도소는 2개가 있었는데 천안소년교도소에는 초범, 김천소년교도소에는 2범 이상의 수형자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보이스카웃 체제로 나름대로 위계질서가 있었는데 군대에서 소대장 격인 영조장이 공장이나 직업훈련생, 학과 교육생으로 나누어진 각 취업장을 대표하였고, 중대장, 단대장으로 조직이 이루어져 있었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지금 같으면 훈방될만한 사건도 몇 년씩 받곤 했다.

 소년교도소 군기가 세다고 소문났지만 내 군대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직원들에게 혼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용자들 간 위계질서에 의해서 수용생활이 힘들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시절이었다.


  나는 소년수용자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해 주었다. 초범의 소년수형자들은 성인과 달리 개선의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마음으로 대해 주면 그만큼 따라왔다. 하지만 교도소 안에서의 다짐과 달리 출소해서 재범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정환경이 좋은 아이들은 출소 후 생활기반이 있기 때문에 재범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데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사회에 정착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용자의 인권이 열악한 만큼 징역살이도 힘든 시절이었지만 수용자와 담당 직원 간에 끈끈한 정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당시 교도관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였다. 3부제하에서 휴가도 마음대로 못 갔다. 야근 근무자가 휴가를 내면 일 근자 중 누군가 대신 근무를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철이 되어 배치주임한테 여름휴가를 얘기했더니 신규가 휴가가 어디 있냐? 고 얘기하며 불허하기도 했고 아내가 출산을 해도 눈치를 보며 휴가를 가야 했다.  어떤 선배가 배치주임에게 아내가 출산을 해서 집에 가야 하니 휴가를 내달라고 하자 배치주임이 대신 근무 들어갈 사람이 없다고 불허하며 “자네가 아기 낳냐?”라고 말하며 면박을 주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직원들의 근무환경도 매우 열악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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