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과장님이 긴급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과장님께서 사장님과 함께하는 간부회의에 참석했다가 사장님께 한 소리를 들으셨나 봅니다. 사장님께서 다른 부서의 과장님들이 퇴장하시고 나서 우리 과장님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네 선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간부들이 나한테까지 보고하러 오게 만드는가? 자네는 대체 뭐 하고 사람인가?’ 비록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생생한 현장이 느껴집니다. 사실 저 역시 과장님으로부터 똑같은 그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의식하지 않고 급히 내뱉게 되는 말들은, 평소 내가 자주 하는 생각들이거나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화’와 ‘분노’도 그런 것 같습니다. 흔히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화가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미처 손쓸 틈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화가 용암처럼 분출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화’라는 책의 저자 틱낫한은 화내는 사람을 연민으로 바라보라고 했나 봅니다. 상대방의 화와 분노를 마주하는 사람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그 화와 분노를 가진 사람 역시 고통 속에 허우적 대고 있으니 매한가지입니다.
불행하게도 오늘은 옆에 직원에게 과장님의 용암이 분출되어 버렸습니다. 간부회의에 다녀온 과장님은 ‘아아 내가 ㅇㅇ부서 때문에 못살아~ ㅇㅇ주임, 대체 그 부서는 왜 그런답니까? 왜 예산실에서 안된다는 것을 사장님께 또 언급을 해서는... ’라고 화를 내셨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구나’ 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이 마치 하루살이 같기도 해 허탈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다른 사업부서들의 예산을 총괄 편성하는 예산부서 입장에서 ‘그 사업은 더 이상 언급하지 말아 달라. 사장님이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사업부서에 미리 언질을 주었어도, 사업부서 입장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노력과 비용들이 있기 때문에 단칼에 그 사업을 접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장님과 함께 하는 간부회의 자리에서 각 부서의 과장님들은 예산부서가 안된다고 한 사업들을 끝내 살리고 싶어 다시 한번 사장님께 건의를 드렸나 봅니다. 과장님들의 그 끈기와 열정에 감탄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합니다.
저는 하루살이지만 과장님들은 불나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짝이는 불빛에 직진하는 불나방은 전등의 뜨거운 열기에 그만 날개가 닿아 타버리고 맙니다. 예산실과 사업부서간 협의 후 이미 깔끔하게 결정되었다고 생각한 사업들이 다시 언급되는 것에 화가 나신 사장님은 그나마 들어갔던 사업예산마저 거의 다 깎아버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순조로운 결재 통과가 어려울 듯해 보입니다. 부서들에서 우리 과장님과 협의할 게 있다고 해도, 회의가 길어질 것 같으니 내일 아침에 오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돌려 말하느라 진땀 났습니다. 오셔도 좋은 말 못 들으실 테니, 오늘은 시간의 힘을 빌려와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