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by 거북이

올해 2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형부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잠 못이루며 괴로워하던 날들로부터 영영 해방되어 형부는 이제 평생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지요. 비록 같은 부서에서 일한 적은 없으나. 형부는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던 상사이기도 했습니다. 언니 역시 같은 직장을 다녔지요. 지금 언니는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휴직중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없는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가족이 둘씩이나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으쓱해 했었는지를. 나는 상실감과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있을 때 더 잘할 것을, 차 한잔 점심 한끼 더 하자고 할 걸.


때때로 산다는 것이 지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애도할 시간이 어딨느냐고 애도는 사치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회사에서 당장 눈앞에 요구되는 일들을 기계처럼 꾸역꾸역 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계약된 종착역에서 내리기전까지는.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학교 밖을 꿈꿨고, 부모님 밑에서 용돈을 타쓰던 시절에는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키울 때는 육아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지금은 20년 동안 회사 밖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다가 그만둔 작가들을 기억합니다. <외투>를 쓴 고골리도, <씨앗을 심는 사람>의 저자 장 지오노도, <자전거 여행> 김훈도.

나는 줄곧 노예였습니다. 직장의 노예, 월급의 노예. 자유롭고 싶어서 어쩐지 힘이 되어줄 돈과 권력이 있어야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에서 힘이 있는 부서가 어디지? 나도 거기에서 한번쯤은 일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획, 인사, 총무, 예산 부서에 있으면 일 좀 하네? 그리고 쓸만하네, 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차 우연한 기회에 예산부서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신에 가족들과 여름휴가 떠나지 못했습니다. 종일 긴장하며 책상에 앉아 일만 했더니 자다가 발에 쥐가 날 정도였습니다. 종아리에 주먹만한 크기의 딱딱한 돌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이정도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으쓱. 조직에서 대체불가한 사람이라도 되는 냥, 으쓱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소모품 같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지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고 나서도, 다른 사람이 와서 또 나처럼 이렇게 일을 하고 있겠지요.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 재정사정이 좋았던 5년도 전에 예산실에 근무하던 누군가가 연말쯤 스페인 연수를 갔다는 게 부러웠고, 조직개편으로 사무실 이사를 다니지 않는 것이 부러웠을 뿐인데요.

유행이나 시류에 따라 조직개편이 이뤄질 때 어느 부서들은 종종 새로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회계, 예산, 총무, 기획 등등 몇 몇 부서들은 고정적이었지요. 어느 해 조직개편으로 사무실 이사를 하기 위해 무거운 책상 등을 나르던, 여름철 얼굴이 빨개지도록 땀을 흘리던 젊은 직원 한명이 2킬로가 빠졌다고 했습니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선물해줄 돈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을 나온지 오래입니다만, 어느 독서모임에서 그곳 사람들이 주식을 같이 해보자고 했습니다. 함께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규모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은 영끌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퇴직금, 보험대출, 심지어 아이들이 어린이집 저축의 날 때 모아두었던 코 묻은 돈까지 손을 댔습니다.

욕심으로 나는 상당한 돈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빚이 아니라 이자만 포도시 내고 있습니다. 우리 네 식구의 입은 야무지게 벌어져 있고, 여름이면 복숭아랑 포도도 먹고 싶고 아이들은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에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꿈꿨던 몇 몇 소원들은 모두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었고, 10여년 뒤면 퇴직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그러니까 나는 내 소원이 이미 이뤄질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앞당기고 싶어서 그렇게 애가 탔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조급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라는 이 속담 알아?‘ 딸아이가 어느 날 물어봅니다. 나에게 이 말은 ‘이사를 많이 다니는 부부가 덜 싸운다’와 같은 류의 말로 들렸습니다. 어떤 일에 몰입할 때 걱정, 염려들이 사라지는 경험과 같습니다. 자유는 어쩌면 여기에도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복되고 훈련되어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 몰입할 수 있게 되겠지요. 역시 조급해 하지 말고 기다려야합니다.


그리고... 일에 너무 지쳐 몸도 마음도 피로해 질 때. 한달에 한번 모이는 독서동아리 모임에도 가기 싫고, 점심을 같이 먹자는 몇몇 직원들의 제안도 귀찮고 일주일 한번 있는 글쓰기 강의도 귀찮아 지는 것입니다. 평범했던 예전의 일상들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이때 일상을 버티는 것도 힘이 있는 일이라고. 내 안의 어느 친절한 목소리가 말해줍니다.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그냥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때는 필요한 일이며 그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는 거라고 토닥토닥 위로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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