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by 거북이

토요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평생 물방울만 그리셨다는 김창열 화가의 작품들 만났습니다.


물방울의 근원은 화가의 중학교 학급 친구들이 6.25전쟁에 동원되고 그 중 절반이 폭격으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죽은 이들의 피부에서 베어나오는 그것이 평생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마음으로 물방울들을 그려나갔습니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기억으로 쉬이 잠들 수 없는 수많은 나날들. 그런 날들이 그가 그린 물방울 만큼 이어지고 화가는 자기가 그리고 있는 것이 자기가 흘린 눈물인지도 모를 그런 것들을 계속 그려나갔겠지요.


한 사람의 고통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을 ‘예술적으로 승화했다’고 말합니다. 머릿속에 맴돌기만 하던 생각과 느낌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하고 풀어내는 것이 예술이기도 한 듯합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가는 춤으로, 작가는 글로. 아들이 죽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담하게 시로 표현한 김현승 시인의 시도 생각납니다.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눈물을 지어 주시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고 각자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직면하고 싶지 않는 것을 직면해야 할 때. 처음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고.... 어쩌면 ‘사람’이 아닌 ‘시간’이 대신 용기를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승화한 흔적’를 만날 때 감동합니다. 자유의 한 편을 엿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고통을 헤아려 주는 작품이나 사람을 만날 때 해방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극한직업’이라는 텔레비전 프로에서도 보았습니다. 평생을 전업주부나 직장인으로만 살다, 한 트로트 가수의 팬이 되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이 지역으로 저 지역으로 다니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에서도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창열 화가의 작품을 보고 ‘나는, 우리들은 무엇을 평생을 그려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진득하니, 꾸준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바쁜 일을 핑계로 한달 이상 글을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서니 어색하기만 하고. 내가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나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 첫 걸음인 듯합니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물방울들이기도 했습니다. 홀로 구석에 맺힌 물방울이기도 했다가, 때론 만나고 싶지 않는 물방울과도 만났다가, 그러다가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나서 커다란 물방울이 되기도 합니다. 증발되어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겠지만은, 각자의 삶에서 ‘예술로 승화하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물방울이 처음에 볼에 흐르는 눈물로 보였다가 이제는 귀한 보석으로 보입니다. 인디네 생각쟁이 고전 식구들처럼요. 진성섭 노마드 스승님이 이끄신 오프라인 미술관 모임, 오랜만에 반가웠습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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