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고전독서 오프라인 모임을 위해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약속시간까지는 1시간 넘게 남아 책이라도 읽을 요량으로 근처 까페에 들어갔습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출출하기도 해 녹차라떼를 주문하고 남은 자리가 어디 어디 있는지 쓰윽 둘러보았습니다. 토요일 오후가 시작 되려는 주말이라 그런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비어있는 자리는 출입구 쪽. 나는 2인 탁자들이 두,세 개 놓인 곳으로 갔습니다. 배에 힘을 쏙 주어야 겨우 들어갈 틈을 허용하는 곳이었습니다.
외투를 의자에 걸치고 가방에서 읽을 책을 꺼냈습니다. 곧이어 내 옆 테이블에 금발머리 외국인 커플이 앉았습니다.
별다방이라고 불리는 이 카페는 진동벨 대신, 손님이 미리 정해놓은 닉네임으로 음료가 나왔음을 알려주기로 유명합니다. 시대 흐름을 반영한 ‘리치 님’,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유년시절의 사랑스럽고 달콤한 기억이 날 것 같은 ‘딸기초코 님’, 경우에 따라서 듣는 이들에게 가벼운 웃음을 선사하기도 할 법한 ‘차은우 님’ 등등의 재미있는 닉네임들이 떠오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나는 단지 ‘ㅇㅇ번 고객님’으로 불릴 예정입니다. 닉네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미리 약속된 모바일 앱이나 장치로 주문을 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즉석에서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차가 언제 나올지 신경이 쓰여 책은 읽은 둥 마는둥 했습니다. 두 눈은 분주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드나드는 출입구 쪽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리 사냥’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과 팔꿈치가 금방이라도 닿을 듯해 신경이 쓰였습니다. 또 그들이 영화에서처럼 "하이!" 하며 영어로 말을 걸어올 것 같아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가 나온 줄도 몰랐습니다. ‘이상하네. 왜 아직도 차가 안나오지?’ 이미 나올 때가 지난 듯해 음료가 나오는 곳에 가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녹차라떼가 담긴 쟁반은 순서에 밀려 구석쪽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녹차라떼는 미지근했고 언젠가 사무실에서 눈치만 보다가 제 때 먹지 못해 식어버린 클로렐라 피자맛과 어쩜 그리 똑같았는지.
넓은 매장은 주말 손님이 북적거렸고, 분명 직원이 계속해서 음료가 나왔음을 알리고 있었건만... 왜 나는 듣지 못했던 것일까요. 음료가 나왔다고 좀 더 큰 소리로 알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괜시리 직원 탓을 하는 마음이 쑤욱 올라왔습니다.
손님이 원하는 닉네임을 부르게 한 회사 정책의 의도가 분명한데. 미소 지으며 ‘맛있게 드세요’ 라고 친절하게 말 한마디 건네주지는 못할망정 ‘인간 진동벨’이 되어 끊임없이 ‘ㅇㅇ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라는 말만 옹아리처럼 기계적으로 내뱉는 카페 직원이라니.
한편으로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도 마치 저 직원과 다를 바 없을 때가 많은데 누가 누굴 탓해,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탓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서울이라는 낯선 환경속에서 내 무의식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고 누군가의 ‘따뜻한 친절과 환대’를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기쁨도, 재미도, 열정도 없이 오로지 ‘해야한다’는 책임과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킬 때가 많았습니다.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데도 에너지가 딸린다며 힘들어 했습니다.
오래전, ‘일이 재미가 없다’는 나에게 친구는 ‘배부른 소리 마라’고 ‘일이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느냐?’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일을 통한 ‘보람’이나 ‘자아실현’은 도덕.윤리 교과서에만 있다고 했습니다.
일을 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나는 참 철딱서니가 없나봅니다. 여전히 나는 매일 매순간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