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하늘이가 삽니다. 녀석은 다리가 상당히 짧고 얼굴은 넙데데하고 눈만 쓸데없이 둥그렇고 그렇습니다. 코로나 시절 딸아이의 ‘나만 없어, 고양이’에 넘어가 올해로 녀석과의 동거는 5년차에 접어듭니다.
녀석은 낯선 사람이 집에 방문하면 경계하고 하악질도 곧잘 합니다. 예민해서 집사인 나조차도 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식구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집사 일 거라 장담합니다. 왜냐하면 내 옆에서 머무르거나 잠자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늘이가 동거 4년차 때부터는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책상에 앉아 골똘해 있는 내 등 뒤에서 녀석은 분명 ‘집사, 오늘은 출근 안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집사, 나 좀 만져줘,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줘’
올해 1월 업무가 바뀌었습니다. 낯선 업무에 어찌나 긴장을 많이 했었던지 온통 실수투성이었습니다. 몇 번을 봐도 고칠 데가 없었는데, 상사의 손에 보고서가 들리기만 하면 이곳 저곳 손댈 곳 투성이입니다. 상사는 이런 나를 1월부터 8월까지 5번 '반성의 방'으로 불러 왜 이렇게 일을 못하는지를 물었고 '정신 차리라' 고 말했습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데,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에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하반기 업무 시즌이 되자 악몽도 종종 꿨습니다. 컴퓨터 앞에 숫자를 맞추느라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시간과 동시에 정확하기까지 해야 하니 피로감이 몰려들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내가 인간이 아니라 컴퓨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틀리지 않는 기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판단하는 기계,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렇게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상사가 하룻밤 꿈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해주시옵소서... 마치 크리스마스 전날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꿈을 꾸고 180도 바뀐 것처럼...
랜드마크 포럼에서는 타인의 말을 황금을 찾는 것처럼 듣는다고 해서 ‘황금듣기’ 라고 했고, 부처는 욕망이 없는 상태를 ‘해탈했다’라고 합니다. 고통이 없는 상태이지요.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면 순전한 나만의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공통의 합의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마드 스승님은 다른 사람의 욕망을 잘 들어주는 것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까짓것, 고양이의 말도 들을 수 있는 나인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욕망이 드러나게 하는 ’말‘을 듣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틀리기 싫고 완벽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상사의 마음. 그 욕망의 끝에는 결국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랑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겠지요. 겉으로는 제마다 다른 모습의 욕망이지만 결국은 사랑입니다. 그저 인정받고 사랑받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양할 뿐. 아마 상사에게 있어 인정받고 사랑받는 방법은 틀리지 않고 완벽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내 욕망이 타인의 욕망과 조화롭게 공존 하기를 기도합니다.